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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빈곤층엔 재난인 폭염, 미세먼지같은 대책 짜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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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이상재 복지행정팀 기자

이상재 복지행정팀 기자

태풍의 영향으로 하루 주춤했지만 폭염은 입추(立秋)를 지나서도 맹위를 떨치고 있다. 서울은 지난 6일 36.8도, 10일 36.5도를 기록할 만큼 대표적인 폭염 지역으로 떠올랐다. 최근 석달간 30도를 넘은 날이 33일로 사흘 중 하루꼴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44일)보다는 덜하지만 ‘서프리카(서울+아프리카)’ ‘서하라(서울+사하라사막)’라는 표현이 결코 과장이 아니다.

서울을 포함한 전국 곳곳에서 무더위와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횡단보도 앞 그늘막이나 공원 쿨링포그(물안개 분무시설)가 낯설지 않다. 서울은 취약계층에 대해 매달 전기요금 8000원을 깎아준다. 부산에선 도로와 산책로에 특수도료를 칠해 표면 온도를 낮춰주는 ‘쿨 페이브먼트’가 등장했다. 대구시는 폭염 취약계층에게 양산 1000개를 나눠주는 ‘양산 쓰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올해는 무더위 야간 쉼터가 추가됐다. 구청 대강당이나 체육관, 주민센터 등에 텐트를 설치하고 저녁부터 이튿날까지 취약계층에게 시원한 잠자리를 제공하는 사업이다. 열대야 피난처인 셈인데, 행안부에 따르면 전국 774곳에서 시행 중이다. 서울에만 154곳이 있다. 지난해 서울 노원구 등에서 운영해 호응이 높자 전국으로 확대했다.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서울 중랑구에 사는 A(71·여)씨는 반려견과 함께 살고 있다. 날마다 야간 쉼터를 찾아 에어컨 바람을 쐬고 싶지만, 그는 매일 저녁 혼자 지낸다. 야간 쉼터엔 반려동물 출입이 허용되지 않아서다. A씨는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아이(반려견)를 혼자 둘 수도 없다”고 말했다. 용산구의 작은 쪽방촌에 사는 B(60대)씨 역시 야간 쉼터에 가본 적이 없다. 거동이 불편한데다 지역 주민들의 ‘텃세’도 은근히 걱정된다. 그렇다고 B씨에게 ‘재난 도우미’가 찾아와 안내한 적도 없다. 서울시가 창문형 에어컨 지원 사업을 하고 있지만, B씨가 사는 낡은 시설엔 집 파손을 우려하는 집주인이 설치를 꺼린다. 사각지대가 여전하다.

폭염 대책이 미세먼지 대책을 닮으면 어떨까. 서울시는 일부 비난 여론이 있지만 배출가스가 많은 차량 운행을 제한하고, 비산먼지를 규제하는 ‘그물망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이같은 촘촘함과 과감함이 폭염 대책에도 필요하다는 얘기다. A씨가 반려동물과 함께 이동하도록 배려하고, B씨의 방에 에어컨을 달 수 있도록 요청해야 한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폭염으로 온열 질환자 4526명이 발생했다. 이 가운데 48명이 숨졌는데, 태풍·호우·한파 사망자(16명)보다 인명 피해가 컸다. 올해도 9일 현재 1257명이 발생했고, 7명이 숨졌다. 상당수는 홀로 사는 노인이나 농민, 노숙인 등 취약계층이다.

경우가 조금 다르지만 변화 조짐도 있다. 전국재해구호협회는 반려동물과 함께할 수 있는 대피시설 조성을 검토하고 있다. 지난 4월 강원도 산불로 개·고양이 같은 반려동물이 피해를 보고, 그나마도 대피소로 함께 피난할 수 없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다. 정부의 재난 비상대처요령에는 ‘대피소에 봉사용 동물을 제외한 애완동물은 데려갈 수 없다’고 돼 있다. 독거 노인에게 반려동물은 식구와 다름없다. 현실과 동떨어진 규정을 개선하는 것이다.

폭염은 당분간 지속된다. 더 이상 희생자가 나오지 않게 신속히 움직여야 한다. 찬바람 불기를 기다리는 건 너무 무책임하다.

이상재 복지행정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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