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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통북봉남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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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한국을 둘러싸고 미국과 북한에서 이상한 장면이 연출됐다. 먼저 트럼프 미국 대통령. 그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으로부터 받은 친서를 공개하며 이날 시작한 한ㆍ미 연합훈련(연합 지휘소연습)을 공격했다. 이를 이어받아 북한 외무성의 권정근 미국국장은 한국 정부를 향해 '똥'이라는 원색적인 표현을 사용하며 한국을 거칠게 비난했다. 한국이 미국과 북한 양측으로부터 동시에 비난받는 전례 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10일(현지시간) 자신의 트위터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친서에서 매우 정중하게 '한ㆍ미 연합훈련이 끝나는 대로 만나서 협상하고 싶다'고 말했다”며 북·미 회담에 기대감을 보였다. 그러면서 한미 연합훈련을 "터무니없고 돈이 많이 드는(ridiculous and expensive) 훈련"이라고 직설적으로 비난했다. 동맹국인 한국에는 "훈련 비용까지 내라"고 청구서를 날려 놓고선, 김 위원장의 훈련에 대한 불평에는 맞장구를 친 것이다. 전날 "(친서에서) 김 위원장은 다른 쪽(한국)이 미국과 함께 하는 ‘워게임’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나도 결코 좋아한 적이 없고, 팬(fan)인 적도 없었다"고 한 발언에서 한 걸음 더 나가 북한의 주장을 옹호하는 듯한 논리를 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잇따른 단거리 미사일 발사로 무력시위에 나서고 있는 김 위원장에겐 “정중한 편지(를 보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이 북한과 직거래하며 한국을 배제하는 소위 통북봉남(通北封南)을 연상시킨다는 점이다.
미국과는 실리적 외교를 지향하며 남한의 참여는 봉쇄하는 북한의 기존 '통미봉남(通美封南)' 정책에 이어 한국 정부로선 북·미 양측으로부터 배제되는 '이중(二重) 봉남(封南)'의 처지로 몰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현준 국민대 겸임교수는 “지난해 한국의 중재와 노력으로 북ㆍ미 협상의 판과 창구가 생겼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돈으로 동맹을 평가하거나, 피로 맺은 동맹의 근간을 흔드는 듯한 태도는 북한에 잘못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의 반응이 나오자마자 북한은 당장 이를 거들고 나섰다. 최근 고비마다 북한의 외교 메시지를 발신하는 창구역할을 맡고 있는 권정근 미국국장은 11일 담화를 내고 “똥을 꽃보자기로 감싼다고 악취가 안 날 것 같은가”라며 한국 때리기에 나섰다. 그는 지난 6월 27일 “미국과의 대화에 한국은 빠지라”는 담화를 내놓았고, 사흘 뒤 판문점 북미 회동이 성사됐다. 그는 이날은 한국 정부를 향해 “바보는 더 클수록 바보가 된다. (남측 당국자들이) 새벽잠을 제대로 자기는 코집이 글렀다”(새벽잠을 자기엔 틀렸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4월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당시 김 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새벽잠 설치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던 약속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점을 밝힌 것이다.
이처럼 미국과 북한이 한국을 배제하려는 움직임은 ‘돈’과 ‘불만’에 기인한 것이란 분석이다.
내년 재선을 앞둔 트럼프 미 대통령은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 진전 못지않게 경제적 성과가 필요한 상황이다. 훈련 비용을 내지 않고, 주한미군 주둔 비용을 한국에 떠넘기면 상대적인 성과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조만간 시작할 내년도 방위비 분담금 협상(SMA)에서 현재 미국이 부담하고 있는 비용을 "필요하면 한국이 부담하라"는 식으로 떠넘기려는 의도가 깔렸다는 지적이다.
SMA 협상에 관여했던 전직 정부 당국자는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술은 '기-승-전-돈'으로 읽힌다”며 “돈을 남기기 위해선 동맹이나 안보를 뒷전으로 하겠다는 건 위험한 발상”이라고 덧붙였다.
여기에 주한미군을 감축하거나 철수할 수 있다는 복선도 깔렸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이 본토만 공격하지 않는다면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입장을 트럼프 대통령이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다. 북한이 최근 시험 발사한 미사일은 240~600㎞ 정도로 유사시 미군 증원 세력이 도착하는 남해안 일대나 경북 성주의 고고도미사일 방어(THAADㆍ사드) 미사일 기지가 포함된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단거리 미사일이기 때문에 문제 될 것이 없다”고 했다. 결국 한국과의 방위비 협상, 그리고 북한과 비핵화 협상이 재선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 따라 한국을 압박하려는 일종의 협상술일 공산이 크다.

반면 김 위원장은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를 신년사에서 밝혔는데,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로 진전이 없자 한국에 불만을 보이며 미국과 직거래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진희관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는 "김 위원장의 언급은 북한 당국자들의 정책의 기준"이라며 "남북이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 재개를 약속(지난해 9월 남북공동선언)했음에도 남측이 이행할 수 없다면 '아예 빠지라'는 의미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미사일 3종 세트 공개한 북한= 북한은 한미 연합훈련 개시(10일)에 맞춰 10일 오전 함경남도 함흥에서 2발의 미사일을 발사했다. 11일 북 관영 매체들은 '신종 무기'라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도했다"고 밝혔다. 북한 매체들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우리나라의 지형조건과 주체 전법의 요구에 맞게 개발된 새 무기가 기존의 무기체계들과는 또 다른 우월한 전술적 특성을 가진 무기”라며 “또 하나의 새로운 무기가 나오게 됐다”고 했다.
북한은 구체적인 무기의 이름이나 종류에 대해선 밝히지 않았다. 다만 북한이 공개한 사진 6장으로 미뤄볼 때 목표지점 상공에서 수류탄과 같은 자탄(子彈)을 떨어뜨려 넓은 지역을 공격하는 전술 미사일인 '에이테큼스(ATACMS)'인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정홍용 전 국방과학연구소장은 “북한이 공개한 사진만으로는 미사일의 성능을 파악하기 어렵지만 2발의 미사일을 탑재하는 발사대나 미사일 외형상 미군의 전술지대지 미사일인 에이테큼스와 유사하다”고 말했다. 최근 북한이 발사한 북한판 이스칸데르 KN-23, 대구경 방사포에 이어 '신형 단거리 무기 3종 세트'가 완성된 셈이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최근 북한이 선보인 3종의 무기는 사거리가 길어지고, 고도는 낮추면서도 속도는 빨라졌다”며 “모두 고체연료를 사용해 이동식 발사대(TEL)을 차량에서 발사한다는 점에서 발사 시간 단축과 발사 원점의 다양화로 한ㆍ미 정보자산의 탐지와 킬체인(선제타격)을 어렵다는 점을 과시하려는 듯하다”고 분석했다.
정용수·이근평 기자, 워싱턴=정효식 특파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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