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日 2차 보복 단행되자…추경안, 100일 만에 국회 넘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일본 수출규제 대응 예산 2732억원이 들어 있는 2019년도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국회는 2일 오후 본회의를 열어 5조8269억원 규모의 추경안을 의결했다. 당초 정부가 제출한 추경 원안은 6조6837억원 규모였지만, 여야 논의 끝에 8568억원을 순삭감했다.

2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2019년도 추가경정예산안이 가결되고 있다. [연합뉴스]

2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2019년도 추가경정예산안이 가결되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 수출규제 대응 예산 2732억원은 삭감하지 않고 기존 원안에 정부가 추가로 제출한 그대로 반영됐다. 추경안 총칙 중 예비비 지출 부분에는 일본의 무역보복 이후 원안에 없던 ‘국내 산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수출규제 대응에 필요한 긴급한 재정지원’이란 문구가 추가됐다.

지상욱 바른미래당 간사는 “시시각각 변하는 위기에 유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목적 예비비 대상 조항에 이번 (일본 수출규제)건을 삽입했다”며 “일본이 화이트리스트(수출 우대국 목록)에서 한국을 배제함에 따라 우리 기업에 미칠 수 있는 부정적 영향에 대비하기 위해 국회 차원에서 문을 열어 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추경안은 정부 원안에서 1조3876억원을 감액하고 5308억원(일본 대응예산 2732억원 포함)을 증액하면서 결과적으로 8568억원이 줄어들었다.

2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 이인영 원내대표(가운데) 등 더불어민주당 원내지도부와 자유한국당 정양석 원내수석부대표(왼쪽 위)가 이야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2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 이인영 원내대표(가운데) 등 더불어민주당 원내지도부와 자유한국당 정양석 원내수석부대표(왼쪽 위)가 이야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삭감된 예산은 주로 여당이 ‘경제 살리기 예산’이라고 주장한 일자리 사업 예산 등이다. 야당은 이를 ‘총선용 퍼주기’ ‘통계왜곡형 가짜 일자리 사업’으로 규정하며 삭감을 별러 왔다. 국채 발행 규모도 기존 3조6409억원에서 3066억원 감액한 3조3343억원으로 했다.

증액한 5308억원 중에는 ▶강원도 산불, 포항 지진 등 재해대책 예산 ▶붉은 수돗물 대책 예산 ▶마늘·양파·아로니아 등 농산물 과잉 공급 안정 대책 예산이 들어 있다.

◇일본 수출규제가 국회 통과 동력=지난 4월 25일 제출된 추경안은 선거제, 공수처법 등이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되는 과정에서 여야가 극한 대립으로 치달으며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이후 여야가 지난 6월 28일 6월 국회 정상화에 합의하면서 추경안 논의가 겨우 수면 위로 올라왔다.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추경안에 대해 제안 설명을 한 게 국회 제출 79일 뒤(지난달 12일 예결위)였다. 당초 여야는 6월 임시국회 마지막 날인 지난달 19일 추경안을 처리하기로 했다. 그러나 정경두 국방부 장관 해임건의안 처리 등을 놓고 여야가 충돌하며 추경안도 처리되지 못했다.

여야의 재협상을 추동한 건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와 북한의 미사일 발사 등 안보 요인이었다. 여야 3당 원내대표는 지난달 29일 회동에서 7월 임시국회를 열어 1일 본회의에서 추경안을 처리하기로 다시 합의했다. 일본 정부의 보복적 수출규제 조치 철회 촉구 결의안, 동북아시아 역내 안정 위협 행위 중단 촉구 결의안도 의결하기로 했다. 일본 정부가 2일 각의를 열고 자국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2차 보복’ 조치를 결정할 우려가 높아, 여야 모두 국회 차원에서 선제 대응할 필요성에 공감했다.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 전광판에 370회 국회(임시회) 제1차 본회의 2019년도 제1회 추가경정예산안을 통과가 표시돼 있다. [뉴스1]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 전광판에 370회 국회(임시회) 제1차 본회의 2019년도 제1회 추가경정예산안을 통과가 표시돼 있다. [뉴스1]

◇역대 두 번째로 길었던 추경 통과= 하지만 여야 합의에도 불구, 예결위 간사회의에서는 마지막까지 감액 규모를 놓고 여야가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여야 논의는 2일 일본의 2차 보복 조치가 현실화되고 나서야 속도를 냈다. 여야 3당 원내대표는 지난 1일 밤 추경안 총액 규모를 5조8269억원으로 합의했다. 추경안 규모에 큰 틀에서 합의한 뒤 예결위에서 ‘디테일(Detail·세부내역)’을 조정해 나가는, 이례적인 ‘탑다운(Top-down)’ 방식이었다. 원내대표들의 합의 이후 추경안은 예결위 추경안조정소위→전체회의를 거쳐 오후 8시 56분 본회의를 통과했다(재석 288인 중 찬성 196인, 반대 12인, 기권 20인). 정부가 국회에 추경안을 제출한 지 꼭 100일 만이었다. 107일이 걸린 2000년도 추경안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긴 기간이었다.

추경안 증액·감액분 뜯어보니

국회는 추경안을 심사하면서 어떤 예산을 늘리고 줄였을까.

대표적인 증액 예산은 일본 수출규제 대응 예산이다. 총 증액분 5308억원의 63.4%를 차지하는 2732억원 규모다. ▶소재·부품 기술 개발(650억원) ▶반도체·디스플레이 성능평가 지원(350억원) ▶기계산업 핵심기술 개발(320억원) ▶중소기업 기술혁신 개발(217억원) 등이 담겼다.

붉은 수돗물 대책 예산은 1178억원이 증액됐다. ▶노후 상수도 정비(800억원) ▶어린이집 기능 보강(195억원) ▶노후 상수관로 지원(100억원) ▶학교 대용량 직수정수기 설치(83억원) 등이다.

재해 대응 예산은 포항 지진 예산 560억원, 강원도 산불 예산 385억원이 늘었다. 포항 지진 관련 증액 예산 에는 ▶지진 피해 주민을 위한 공공임대주택 건립(333억원) ▶포항블루밸리 국가산단 내 임대 전용 산업단지 조성(168억원) ▶포항 영일만 신항 여객터비널 건립(10억원) 등이 포함됐다. 강원도 산불 예산의 경우 증액 대부분이 ▶산불피해 소상공인 재기 지원(305억원)이다. 이 같은 내용은 자유한국당 요구 사항이 반영된 결과다.

미세먼지 예산은 239억원 증액됐다. 증액분 전부가 ▶지하역사공기질 개선 대책으로, 환기 설비의 집진 효율을 개선하는 데 필요한 예산이다. 해당 예산은 바른미래당 측에서 증액을 강하게 요구했다고 한다.

감액 예산 1조3876억원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일자리 관련 예산이다. ▶구직급여(4500억원) ▶고용창출장려금(721억원) 등이다.

문재인 정부 핵심 정책인 신재생에너지 관련 예산 430억원(▶신재생에너지 금융 지원(330억원), 신재생에너지 보급 지원(100억원))은 전액 삭감됐다.

이밖의 전액 삭감된 예산은 ▶부산항 신항 토도 제거(300억원) ▶소상공인 지원 인프라 구축(76억원) ▶가상현실(VR) 콘텐츠 육성(60억원)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생태계 구축(31억원) ▶미세먼지 추가 대책 홍보(20억원) ▶공공분야 드론 조종 인력 양성(20억원) ▶창업 저변 확대(10억원) 등이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