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란 벌어졌는데"···으르렁대던 SK이노-LG화학 손잡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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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유출 갈등으로 국내외 소송전을 벌이고 있는 SK그룹과 LG그룹이 협업할 가능성이 커졌다. 일본 수입의존도가 높은 배터리 분리막을 SK이노베이션이 생산하기 때문이다. SK이노베이션은 "LG화학에 분리막을 공급할 수 있다"며 손을 내밀었다. 사진은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왼쪽)와 서울 서린동 SK빌딩 모습. [연합뉴스]

기술유출 갈등으로 국내외 소송전을 벌이고 있는 SK그룹과 LG그룹이 협업할 가능성이 커졌다. 일본 수입의존도가 높은 배터리 분리막을 SK이노베이션이 생산하기 때문이다. SK이노베이션은 "LG화학에 분리막을 공급할 수 있다"며 손을 내밀었다. 사진은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왼쪽)와 서울 서린동 SK빌딩 모습. [연합뉴스]

“내부 싸움보다 국익이 우선”

기술유출 갈등으로 국내외에서 소송전을 벌이고 있는 SK이노베이션과 LG화학이 일본의 무역보복에 맞서 손잡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LG화학은 지난 4월 “SK이노베이션이 배터리 관련 영업비밀을 침해했다”며 미국 국제무역위원회(US ITC)에 특허 침해 소송을 냈고, SK이노베이션은 “근거 없는 비방으로 회사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국내 법원에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이런 두 회사가 일본의 무역보복 상황에서 미묘한 변화를 맞고 있다.

LG화학이 GM에 공급하는 쉐보레 볼트용 전기차 배터리. 한국 배터리 업체의 제조 기술력은 세계 최고지만 분리막 만큼은 80% 이상 일본 수입에 의존한다. [사진 GM]

LG화학이 GM에 공급하는 쉐보레 볼트용 전기차 배터리. 한국 배터리 업체의 제조 기술력은 세계 최고지만 분리막 만큼은 80% 이상 일본 수입에 의존한다. [사진 GM]

일본이 2일 각의를 열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안보상 수출심사 우대국)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하면서 일본에 수입을 의존하고 있는 핵심 소재·부품 수급에 비상이 걸렸다. 우선 타격을 입는 분야 중 하나는 전기차용 배터리다.

전기차 배터리는 LG화학·삼성SDI·SK이노베이션 등 국내 업체들이 세계 최고의 제조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문제는 그동안 핵심소재를 일본 수입에 의존해 왔다는 점이다.

전기차에 들어가는 리튬이온 배터리는 양극재·음극재·전해액·분리막 등 4대 핵심소재로 이뤄지는데 분리막(LiBS)의 경우 도레이·아사히카세이 등 일본 업체의 시장점유율이 높다. 국내 3대 배터리 업체 가운데선 LG화학과 삼성SDI가 일본에서 분리막을 주로 수입한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CATL·BYD 등 중국업체와 세계시장에서 경쟁하는 한국 배터리 업계 입장에서 핵심소재 수급에 차질을 빚는다면 막대한 타격이 예상된다. 한국에선 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 SK아이이테크놀로지가 고품질 분리막을 생산하는데, SK이노베이션이 일본의 수출제한에 맞서 국내 경쟁사에 분리막을 공급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일본 분리막 업체들이 한국 수출 제한에 나선다면 경쟁사라 하더라도 한국 배터리 업체에 분리막을 공급할 수 있다”고 이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기술유출 문제로 LG화학과 소송을 벌이고 있지만 LG화학에도 분리막을 공급할 수 있다”며 “그룹 최고 경영진이 이 문제에 대해선 국익을 우선해야 한다는 입장을 정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SK이노베이션이 먼저 손을 내밀면서 LG화학도 원론적 입장을 내비쳤다.  LG화학은 '비즈니스적으로 필요하다면 SK아이이테크놀로지의 분리막 구매를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LG화학이 SK의 분리막을 공급받게 되면 전면전을 벌이던 두 회사가 ‘부분적 휴전’에 돌입하는 모양새가 된다.

전기차 배터리용 고품질 분리막을 생산하는 SK이노베이션은 중국에 분리막 공장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사진 SK이노베이션]

전기차 배터리용 고품질 분리막을 생산하는 SK이노베이션은 중국에 분리막 공장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사진 SK이노베이션]

리튬이온 배터리 분리막과 관련해 SK이노베이션과 LG화학은 이미 소송전을 벌인 전력이 있다. 2011년 LG화학은 자신들이 특허를 보유한 분리막 코팅 기법을 SK이노베이션이 침해했다며 소송을 냈다가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합의한 적이 있다. 구원(舊怨)이 있는 분야지만 일본의 공격에 맞서 적과 손을 잡을 상황이 된 셈이다.

이미 LG화학은 SK와 ‘예상치 않은’ 협업을 앞두고 있다. LG화학은 배터리 음극집전체로 쓰이는 동박(銅箔)을 국내 동박제조업체인 KCTF에서 공급받는데, 지난달 SKC가 KCTF 지분 100%를 인수했기 때문이다.

두 회사의 화해 분위기 조성을 놓고 배터리 업계에선 ‘당연한 결정’이란 반응을 내놨다.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왜란(倭亂)이 벌어졌는데 국내 기업끼리 감정싸움을 해야 할 이유가 없다. 일본 무역보복의 파고를 넘어서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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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현 기자 offram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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