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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에 건의해달라 하자···김영철 난색, 김여정은 즉시 처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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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당 제1부부장이 정책전반을 두루 챙기는 ‘올라운드 플레이어’ 역할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이 19일 '상반기 북한 정세 평가 및 하반기 전망'을 주제로 간담회를 열었다. 김일기(왼쪽 셋째) 전략연 북한연구실장이 상반기 북한 정세를 설명하고 있다. 왼쪽부터 전략연 임수호ㆍ김인태 책임연구위원, 김 실장, 이기동 부원장, 최용환 안보전략연구실장, 이상근 부연구위원, 성기영 책임연구위원. 백민정 기자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이 19일 '상반기 북한 정세 평가 및 하반기 전망'을 주제로 간담회를 열었다. 김일기(왼쪽 셋째) 전략연 북한연구실장이 상반기 북한 정세를 설명하고 있다. 왼쪽부터 전략연 임수호ㆍ김인태 책임연구위원, 김 실장, 이기동 부원장, 최용환 안보전략연구실장, 이상근 부연구위원, 성기영 책임연구위원. 백민정 기자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전략연)이 18일 진행한 기자간담회에서다. 김일기 전략연 북한연구실장은 이날 “김여정 제1부부장은 직책(선전선동부 제1부부장)과 관계없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수시로 보고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특정한 포지션(직책)에 얽매이지 않고 광폭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직된 체제인 북한에선 자신이 맡은 분야 이외의 업무에 ‘간섭’은 금기시 돼 있는데, 김여정이 당의 정책과 사상교육을 담당하는 선전선동부 업무뿐만 아니라 전 분야를 관장하고 있는 ‘실제’라는 것이다. 김 실장은 “북한에서 신(神)으로 간주되고 있는 김 위원장에 대한 보고가 일종의 특혜로 여겨질 만큼 김 위원장을 만나기 어렵지만 김여정은 수시로 김 위원장을 만나 건의나 결심을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소속과 무관하게 전 분야에 걸쳐 업무 챙기는 실세" #"국제사회 수출 금지한 무연탄으로 내수 전력 생산" #"북, 실무협상 조건으로 내세운 연합훈련 중단은 시간벌기용" #

지난해 9월 평양 정상회담에서 보여준 일화가 예다. 정상회담에 참석했던 인사는 “대남 책임자인 김영철 당 부위원장에게 ‘김 위원장에게 보고를 해서 결심을 받아 달라’고 했더니 ‘자신이 건의드리기 어렵다’고 답했다”며 “김여정 부부장에게 말을 했더니 즉시 처리하더라”고 귀띔했다. 전략연이 분석한 김여정의 무한대 역할론의 단적인 예다. 김 실장은 “김여정이 공식적인 지위보다 ‘백두혈통’(김일성 혈육)과 김정은 위원장의 여동생이라는 인격적 지위가 작용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상반기 북한 정세 평가 및 하반기 전망’을 주제로 진행한 간담회에서 김 실장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로 인해 북한의 경기침체가 지속되고 있다”며 “그러나 무연탄 수출이 막히자 이를 내수로 돌리면서 전력생산(화력)은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고 진단했다. 전략연은 그러나 “이런 상황이 지속될지 여부는 불투명하다”고 진단했다.

지난해 고온현상과 올해 가뭄에 따른 식량 생산 감소로 인한 식량난과 관련해, 연구원은 “식량사정이 다소 어렵지만 곡문가격은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다”며 “이는 북한 당국의 가격통제와 외부도입량(외부지원) 증가, 비축미 방출 등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시장에서 거래되는 식량 가격이 올라갈 경우 민심이반으로 이어지는 만큼 당국에서 공식 시장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있고, 러시아와 중국에서 밀가루 지원이 이뤄지고 있어 어느정도 버티고 있다는 평가다. 전략연은 그러나 ”제재효과가 전방위로 확산하고 무역수지의 적자가 지속되면서 불안정성은 가중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근 북한이 미국과의 비핵화 실무협상 재개 조건으로 내건 한ㆍ미 연합훈련(동맹19-2) 중단 요구는 미국의 의도분석과 대응을 위한 시간벌기 차원이라는 게 전략연의 판단이다. 전략연은 ”미국의 새로운 계산법(핵동결 입구론)에 대한 분석과 대응책 마련을 위한 시간벌기”라며 “하노이(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충격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한 치밀하고 철저한 사전 준비가 필요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완전한 비핵화를 요구해온 미국이 핵동결부터 시작할 수 있다는 취지로 분위기가 바뀌자 이에 대응하는 전략을 수립하는 중일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원은 "미국의 핵동결 입구론은 북한이 하노이 정상회담 이후 지속적으로 요구해온 ‘새로운 계산법’ 요구가 관철된 ‘외교적 승리’로 포장할 수 있다"면서도 "북ㆍ미 실무협상이 열리더라도 북한이 당분간은 비타협적이고 원칙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협상 시작부터 ‘디테일의 함정’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북한이 하노이 회담 실패를 교훈으로 삼고,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정의 문제와 신고 및 검증 문제 등 갈등요인이 쌓여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연말까지 시한부를 제시한 김 위원장과 내년 재선을 앞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치적 이해를 고려하면 실무협상이 난항을 겪더라도 하반기에 정상회담은 열릴 것으로 연구원은 내다봤다.

이와 관련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17일(현지시간) 워싱턴을 방문해 “한미연합훈련이 끝나야 실무협상이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략연은 남북관계는 현 시점에서 비핵화 협상의 진전 없이 앞으로 나가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김인태 책임연구위원은 “내부 조직을 보더라도 대미 외무성 라인은 정비가 됐지만 대남 담당 통일전선부 라인은 검열 등 아직 조직이 정비 중인 것으로 보인다”며 “일단 비핵화 협상에 집중하며 진전 여부에 따라 남북관계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정용수ㆍ백민정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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