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찌로 처진 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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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올해 우리 나라의 수출신장률이 일본·대만·홍콩·싱가포르 등 아시아의 주요 경쟁국 가운데 꼴찌가 됐다.
지난 상반기까지의 국별 수출신장률을 보면 홍콩이 전년 동기대비 23.8%를 기록한 것을 비롯해 싱가포르가 16.1%, 대만이 9.9%, 일본이 8.3%인데 비해 우리는 6.8%신장에 그쳤으며 7월말에는 5.8%로 신장세가 더욱 둔화됐다.
네 마리의 용으로 불리는 아시아 NICS(신흥공업국)중 선두주자임을 자타가 공인하고 머지않아 일본까지도 따라 잡을 수 있으리란 기대에 부풀어 왔던 우리에게 이 같은 성적표는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수출만이 한나라의 경제력을 평가하는 기준은 아니다. 더욱이 최근 통상마찰이 격화되면서 수출의존형 경제의 취약성이 드러나 GNP에서 차지하는 수출의 비중을 줄이고 내수형 경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논의가 강하게 일고 있다.
실제로 이미 지난해부터 내수부문의 성장기여율이 수출을 앞지르기 시작했으며 정부도 현재 45%수준인 수출의 성장기여도를 앞으로 25%수준까지 낮추겠다는 복안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같은 관점에서 보면 우리의 수출신장률이 아시아 NICS나 일본과 비교해 가장 낮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해서 크게 충격을 받을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먼 장래의 일은 제쳐두고 과연 수출신장률이 경쟁국들에 비해 뚝뚝 떨어지는 현실을 팔짱을 끼고 보고만 있어도 될 일인지는 의문이다.
지난 3년간 우리경제가 이룩한 연속 12%대의 고속성장과 국제수지 흑자도 수출증가 때문에 비로소 가능한 일이었음을 기억해야한다.
그런데도 요즈음의 분위기는 마치 수출지원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것 같은 인상을 주고 있다. 물론 지금 우리경제가 안고 있는 가장 큰 과제라 할 불균형 문제가 과거 수출주도형 성장정책의 결과에서 빚어진 부분이 크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으나 그것이 수출부진을 방기해도 좋다는 이유는 될 수 없다.
더욱이 우리가 사태를 안타깝게 보는 것은 이 같은 수출부진이 원화절상이나 임금상승 등 국내외 여건 변화에만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금리정책 등 인위적인 조치에도 적지 않은 책임이 있다는 점이다.
보도된 바에 따르면 지난해 금융자율화를 기치로 내걸고 단행된 금리의 자유화는 대출금리의 상승만을 유발, 일반은행의 평균 대출금리가 88년의 9.8%에서 올 상반기에는 10.5%로 올랐다 한다. 그나마 이것은 은행 쪽의 계산이고 돈을 쓰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올 봄의 금융긴축에 따른 자금경색으로 사실상 20%에 가까운 단기자금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한다. 이 같은 금융 부담의 가중이 원화절상·임금상승으로 허덕이는 기업의 채산성을 더 악화시키고 수출경쟁력을 더 떨어뜨렸음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지금 국내에서는 호화향락업소가 번창, 이들의 매출이 GNP의 58%를 차지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부동산·증권으로 몰리던 투기자금이 골동·서화로 대상을 바꾸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반면 올 1·4분기 제조업 성장률은 1%수준으로 근년에 볼 수 없었던 침체상을 보였다.
작금에 나타나고 있는 이 같은 일련의 현상은 결코 우연이라고만 할 수 없으며 정부의 경제운용에 문제가 있음을 드러낸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경제는 성장을 지속, 선진국의 문턱을 넘어서느냐, 좌절하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정부당국의 냉정한 현실인식과 현명한 대응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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