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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두언의 8년 전 가상 유언장 "너희는 정치 안했으면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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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두언 전 의원이 생전 글을 쓰던 모습. [사진 정두언 전 의원 블로그]

정두언 전 의원이 생전 글을 쓰던 모습. [사진 정두언 전 의원 블로그]

16일 숨진 채 발견된 정두언(62) 전 새누리당 의원은 가족에게 보내는 유서를 남겼다. 평소 친한 사이였던 김용태 자유한국당 의원은 “가족에게 미안하다”는 내용이 담겼다고 전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8년 전 한 종합문예지에 실어 #가족에 대한 사랑 전해 #

정 전 의원은 지난 2011년 종합문예지인 한국문인에 ‘가상 유언장’을 기고했다. 그해 6·7호 ‘못다한 이야기 종이배에 싣고’라는 코너에 실렸다. A4용지 한장 반 분량의 이 가상 유서에는 가족에 대한 사랑, 치열했던 인생, 부모님에 대한 후회 등이 녹아 있다.

정 전 의원은 ‘OO,OO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라는 가상 유언장 첫 부분에 가족에 대한 사랑을 빼놓지 않았다. 그는 “아빠가 이 세상에서 너희를 제일 사랑했다는 사실은 너무도 당연한 얘기지만 마지막으로 꼭 해주고 싶었다”며 “너희가 있어 나는 늘 행복했고, 너희가 없었으면 내 인생은? 글쎄?”라고 표현했다.

정두언 전 의원의 가상 유언장이 실린 한국문인지. [사진 정두언 전 의원 블로그]

정두언 전 의원의 가상 유언장이 실린 한국문인지. [사진 정두언 전 의원 블로그]

가상 유언장이지만 아쉬운 일도 털어놨다. 당시 그는 재선 의원이었다. 정 전 의원은 “이제 와서 고백하지만 난 너무 완벽한 인생, 후회 없는 인생을 추구해왔다”며 “애초부터 되지도 않을 일인 걸 알았지만, 결코 포기가 안 되더구나. 그 덕분에 내 인생은 너무 고달팠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부모님에 대한 후회도 담겼다. 정 전 의원은 “막상 눈을 감으려니 후회가 되는 일도 많구나. 솔직히 난 우리 부모님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단다”며 “하늘나라에 가면 만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부모님께 사과도 받고 사죄도 드리고 싶구나”라고 적었다.

화가 난 딸이 며칠간 말도 않다 『미안하다는 말이 그렇게 힘들었나요』란 책을 준 기억, 홍은동 연예인으로 불린 아들이 어릴 적 그렇게 예뻤을 때 예뻐해 주지 못한 일 등도 담았다.

정치인으로의 삶을 후회하는 듯한 대목도 있다. 그는 “너희는 참 마음이 비단결같이 고운 사람들이다. 아빠도 원래는 그랬는데, 정치라는 거칠디거친 직업 때문에 많이 상하고 나빠졌지”라며 “너희도 가급적 정치는 안 했으면 좋겠다. 한번 발을 담그면 빠져나오기가 참 힘들지. 늘 권력의 정상을 향해서 가야 하니까…”라고 썼다. 정리정돈을 잘 하지 않는 가족을 걱정하기도 했다. 도저히 (정리정돈이) 안 될 것 같으면 정리 알바생을 쓰라고 당부했다.

정 의원은 “유언장을 처음 쓸 때는 막연하고 막막했는데, 이런 식으로 쓰다 보니 끝이 없을 것 같다”며 “속편을 더 쓰기 위해서는 며칠이라도 더 살아야겠구나. 우황청심환 좀 가져다주렴”라고 끝을 맺었다.

정 전 의원은 16일 오후 4시 25분쯤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북한산 자락길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김민욱·박사라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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