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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주가 장사한다며 후임 세입자 거절···"권리금 소송 가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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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본문과 관계없음. [연합뉴스]

사진은 본문과 관계없음. [연합뉴스]

임대인이 상가 임차인을 내보내면서 “내가 그 자리에서 직접 장사하려 한다”는 의사를 명확히 해 임차인이 후임 세입자를 구하지 않고 권리금을 회수하지 못했다면 임대인에게 손해배상 소송을 낼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임차인 한모씨가 임대인 박모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에서 “박씨가 권리금 회수기회 보호 의무를 위반했으므로 한씨는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판결하고 사건을 파기환송했다고 11일 밝혔다.

한씨는 2008년부터 한 상가에서 커피 전문점을 운영했다. 몇 차례 주인이 바뀌었지만 계약은 이어졌다. 2012년 상가 건물을 산 박씨와는 2015년 11월 30일까지 임대차계약을 맺었다.

2015년 말 임대차계약이 끝나자 박씨는 한씨에게 “상가를 비워달라”는 내용의 명도소송을 냈다. 당시 법원은 “임대차 계약이 묵시적으로 갱신됐으니 2016년 11월 30일까지 상가를 명도하라”는 판결을 했다. 한씨는 판결대로 2016년 11월 30일 상가를 비웠다. 박씨는 그해 12월 10일부터 커피전문점을 직접 운영했다.

문제는 한씨가 박씨를 상대로 “후임 세입자에게 권리금을 받지 못했으므로 손해를 배상하라”며 소송을 내며 시작됐다. 권리금은 상가건물 영업 시 영업시설, 거래처, 신용, 영업상 노하우, 위치에 따른 이점 등 유형·무형의 가치를 임차인의 재산적 가치로 인정해주는 제도다. 새로 임차인이 되려는 사람이 이전 임차인이 만들어 놓은 환경에 대해 주는 금전 등의 대가다. 과거에는 관행으로 권리금을 주고받다 2015년부터 권리금이 법제화됐다. 그러면서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에는 임대인들이 세입자 간 권리금 계약을 방해할 수 없도록 권리금 회수기회 보호 조항이 만들어졌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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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씨가 가게를 비우기 전인 2016년 10월 박씨는 한씨에게 “계약이 끝나면 나나 내 아들이 직접 커피전문점을 운영하려고 한다”고 알렸다. 원래 한씨는 권리금 6000만원을 내겠다는 후임 임차인을 구하려고 했지만 박씨가 직접 가게를 운영하겠다고 해 새로 임차인을 구하지 않았다. 한씨는 건물주인 박씨에게 권리금을 달라고 요구했지만 박씨가 거절했다. 그러자 한씨는 박씨를 상대로 3900만원의 손해배상소송을 냈다.

1ㆍ2심은 임대인의 손을 들어줬다. 임대차보호법에서 임차인이 임대인에게 권리금 회수기회를 지켜주지 않았다며 손해배상 소송을 내려면 임차인이 직접 후임 임차인을 주선해야 하는데 한씨는 그러지 않았다는 게 이유였다. 권리금 회수기회 보호 조항은 임차인이 권리금을 보호받을 수 있는 조건으로 임차인이 신규임차인을 주선할 것을 전제하고 있다. 1ㆍ2심은 이를 근거로 임대인이 손해배상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봤다.

대법원은 원심의 판결을 뒤집었다. 대법원은 박씨가 한씨에게 신규 임차인 주선을 거절하는 의사를 명백하게 표시했고, 이런 경우 한씨가 실제로 신규 임차인을 주선하지 않았더라도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사건을 다시 심리하라며 사건을 수원지법으로 돌려보냈다.

내 건물인데 나가라고도 못 하나?…여전한 권리금 논란

권리금 제도는 2015년 법으로 만들어진 뒤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권리금 보호 의무 조항에는 아예 임대인들의 손해배상 의무가 규정돼 있다. 김계리 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정당한 사유 없이 임대인이 임차인이 주선한 신규임차인과 임대차 계약을 거절하는 행위의 폭을 폭넓게 인정한 판결”이라며 “사실상 임대인이 권리금을 보전해주는 결과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임차인을 대리해 소송을 맡았던 한병진 변호사는 “최근 계약갱신권과 관계없이 권리금을 보호해줘야 한다는 판결에 이어 이번 대법원 판결은 임차인의 권리금 회수기회 보호를 한층 더 강화한 판결로 큰 의미가 있다”며 “임대인들이 임차인에게 건물을 임대할 때에는 사실상 공공재라는 인식을 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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