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세계민담전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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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민담전집/신동흔 외 지음, 1차분 10권/황금가지, 각권 1만~1만2천원

몽골 민담에 자주 등장한다는 엄청난 거짓말쟁이 '척척 셍게'. 어느 날 부자에게 큰 솥을 빌려다 양고기를 삶았다.

그런데 인색한 부자는 고기가 채 익기도 전에 하인을 시켜 솥을 가져오게 했다. 척척 셍게는 솥과 함께 자기 냄비를 하나 주며 "댁의 양 삶는 솥이 우리 집에 와서 냄비를 낳았소"라고 말했다. 부자는 냄비까지 날름 받아 챙겼다. 척척 셍게는 또다시 그 부자에게 솥을 빌렸다. 그리고는 솥을 돌려주지 않고 이사를 갔다. 부자가 뒤쫓아와 물으니 척척 셍게는 "댁의 솥이 우리 집에 와서 죽었소"라고 답했다. 부자가 "솥이 죽다니 무슨 터무니없는 수작이냐"고 했더니, 그는 "태어난 솥이니 죽을 수도 있지"라고 말했다는 것.

청나라와 러시아 식민 통치에다 세속.종교 귀족들의 수탈에 시달려온 몽골 민중은 이 허풍 많은 척척 셍게의 이야기를 들으며 답답한 현실을 잊었다고 한다.

이번에 나온 '세계민담전집'은 한국.프랑스.이탈리아는 물론 몽골.남아프리카공화국.미얀마.터키.폴란드 등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지역의 민담까지 아우르는 책이다. 민담을 수집하고 번역한 이들은 러시아 국립 과학 아카데미 러시아 문학 연구소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안상훈씨,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나탈대에서 '줄루 사회의 점술가 이상고마'를 연구한 장용규씨 등 해당 언어를 전공한 전문가들이다.

동서양 문명이 만나는 십자로 터키의 민담에는 마법 비둘기.요정.비밀의 방 같은 신비로운 소재가 많이 등장하고, 가부장제가 엄격했던 줄루족 사회는 역설적이게도 여자와 아이가 고향을 떠나 모험을 한다는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민담이 일종의 해방구 역할을 했던 셈이다.

홍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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