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지적장애 딸 두고 사라져···60대 대만인 명동 실종사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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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초 지적장애가 의심되는 20대 딸과 함께 한국을 찾은 60대 대만인 여성이 사라져 딸에 의해 실종 신고됐었다. 사진은 20대 딸이 혼자 전철을 타고 도착한 회현역의 현재 모습. 김민욱 기자

올초 지적장애가 의심되는 20대 딸과 함께 한국을 찾은 60대 대만인 여성이 사라져 딸에 의해 실종 신고됐었다. 사진은 20대 딸이 혼자 전철을 타고 도착한 회현역의 현재 모습. 김민욱 기자

올 초 한국을 찾았다 사라졌던 60대 대만인 여성의 실종 사연이 뒤늦게 알려졌다. 실종 초기, 함께 방한한 지적장애가 있는 둘째 딸을 고의적으로 두고 사라진 게 아닌지 의심됐던 사건이다. 하지만 신고 이틀 뒤 ‘반전’이 일어났다. 수도권의 한 공공의료원이 이 대만인 여성을 보호 중인 게 확인되면서다.

사연은 이랬다. 지난 1월25일 오후 대만인 A(65)는 20대 딸과 머무는 서울 중구의 한 게스트 하우스에서 나왔다. 체크아웃이 아닌 외출이었다. 이후 지하철을 타려 숙소 근처인 4호선 명동역으로 향했다. 오후 3시20분쯤 모녀는 나란히 회현역 방향 승강장에 서 있었다. 곧 전철이 도착했다. 출입문이 열리고 닫혔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A는 타지 않았다.

전철역에서 헤어진 모녀 

전철을 홀로 탄 딸은 놀랐다. 나중에 경찰 조사에서 알려진 바로는 딸은 지적장애를 앓고 있는 게 아닌지 의심될 정도로 연령에 비해 지능이 낮아 보였다. 곧바로 다음 전철이 회현역에 도착했지만 A는 나타나지 않았다. 당황한 딸은 어머니를 찾으러 반대편 승강장에서 전철을 타고 다시 명동역으로 되돌아갔다.

당시 A는 검은색 코트에 푸른색 바지를 입고 있었다. 대신 모자·부츠·핸드백은 모두 붉은색 계열이었다. 군중들 사이에서 쉽게 눈에 띌 것 같았지만 명동역에서도 A는 딸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딸은 다행히 길을 잃지 않고 묵었던 게스트하우스로 되돌아가 어머니를 기다렸지만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몰리는 서울 명동 모습. 대만인 모녀는 명동 인근 게스트하우스에서 묵었다. 김민욱 기자

외국인 관광객들이 몰리는 서울 명동 모습. 대만인 모녀는 명동 인근 게스트하우스에서 묵었다. 김민욱 기자

모녀 함께 관광한 흔적 없어 

모녀는 서로 전화 연락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한다. 하루 뒤 게스트하우스 측의 도움으로 딸은 경찰에 어머니 실종신고를 했다. 초동수사에 나선 경찰은 뭔가 석연치 않았다. 실종 전 며칠간 한국에 머물렀다고 하는데 이들 모녀가 함께 관광을 다닌 흔적이 없어서다. 한국에 온 목적도 분명하지 않았다. 이들이 묵은 명동 지척에는 남산 등이 있지만 딸의 스마트폰 속 앨범에는 관광지를 배경으로 촬영한 사진이 단 한장도 없었다.

경찰 관계자는 “방한 중 찍은 사진이라고는 A가 식사 중으로 보이는 장면을 스스로 찍은 것뿐이었다”며 “혹시나 60이 넘은 대만 어머니가 지적장애를 앓고 있는 딸을 한국에 두고 간 것은 아닌지 (수사 초기에) 의심됐었다”고 말했다.

"시립의료원 응급실에 보호 중"이라는 연락 

본격적인 실종수사가 이뤄졌다. 실종 이틀 뒤 반전이 일어났다. 28일 오전 1시쯤 60대 대만인 여성이 119구급대에 의해 인천시의료원 응급실에 보호 중이라는 연락이 경찰에 전해졌다. A였다. 경찰 확인 결과 A는 정신질환인 조현병을 앓고 있었다. 처방 약을 제때 먹지 못하면서 증상이 악화한 것으로 보인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하필 인파가 붐비는 명동역 승강장에서 전철에 먼저 오른 딸을 뒤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상태가 심각해진 것이다.

한국 사는 큰딸 걱정돼 방한했다 사고 

그나마 다행히 특별한 문제를 일으키거나 사건에 연루되지 않은 채 비교적 이른 시일 안에 발견됐다. 방한 목적은 관광이 아니었다. 본인의 정신이 온전치 않은 상황에서 역시 지적장애가 의심되는 둘째 딸까지 데리고 한국 땅을 밟은 이유는 큰딸을 향한 ‘모정’(母情)이었다.

또 다른 경찰 관계자는 “취업연수로 한국에서 홀로 생활하고 있는 큰딸이 걱정돼 둘째 딸과 함께 방한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큰딸이 어머니와 여동생의 건강이 걱정돼 방한을 적극적으로 말렸다고 한다. 하지만 몰래 한국에 들어왔고, 결국 이런 일이 발생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김민욱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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