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강갑생의 교통돋보기

“에너지, 다른 데서 아끼시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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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강갑생 기자 중앙일보 교통전문기자
강갑생 교통전문기자

강갑생 교통전문기자

낮 시간에도 이곳저곳을 다니느라 서울 지하철을 자주 이용한다. 그런데 지하철역에 가보면 이용객이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게 해주는 에스컬레이터와 무빙워크가 꺼져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현상은 다른 노선의 지하철로 갈아타는 환승역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다. 환승을 위해 제법 긴 거리를 이동하거나 계단을 오르내려야 하는데 에스컬레이터 등이 꺼져 있으면 꽤나 불편하다. 아마도 에너지 절약을 위해서인 것 같다. 낮에는 승객이 많지 않기 때문에 굳이 에스컬레이터와 무빙워크를 가동할 필요를 못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건 작은 걸 탐하다가 오히려 더 큰 걸 잃어버리는 그야말로 ‘소탐대실(小貪大失)’ 이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대중교통 활성화를 위해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었다. 그런데도 2016년 기준으로 국내에서 버스, 지하철 등 대중교통이 여객 수송에서 차지하는 분담률은 40%가 채 안 된다. 그나마 지하철 노선이 9개와 경전철, 국철까지 대거 다니는 서울은 상황이 나아서 대중교통 수송분담률이 거의 60%에 육박한다. 철도만 따지면 분담률은 30%대 후반이다.

서울에서도 여전히 40% 넘는 사람들은 자가용을 이용한다. 차도 막히고, 유지비도 적지 않은데 왜 굳이 자가용을 타고 다닐까. 이유는 상대적으로 편해서다. 차가 좀 막히더라도 집에서 출발해서 목적지까지 곧바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도어 투 도어(door to door)’ 가 가능한 덕이다. 실제로 걷거나 계단 오르내리는 게 싫어서 지하철을 꺼리는 사람이 적지 않다.

대중교통이, 특히 지하철역이 언제나 이용하기 편하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이동이 편리하고, 쾌적하다면 굳이 지하철 타는 걸 피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최근 스마트폰 앱을 통해 버스, 지하철, 자전거 등 대중교통 이용을 통합적으로 할 수 있는 ‘마스 (MaaS·Mobility as a Service)’가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마스도 이동이 불편하고 많이 걸어야 한다면 효용이 떨어지게 된다. 지하철 운영사에 당부하고 싶다. “부디 에너지는 다른 데서 아끼시길….”

강갑생 교통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