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13.5% 급락…41개월 새 최대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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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수출액이 7개월 연속 감소했다. 3년5개월 만에 최악의 실적을 기록했지만 정부는 여전히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일본 정부가 1일 한국에 대한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수출을 규제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불확실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무역전쟁 여파 주력 제품 부진 #대중 수출 -24% 10년래 최대 감소 #“일본 종속 탈피할 부품기술 개발을”

1일 산업통상자원부와 관세청 등에 따르면 지난 6월 잠정 수출액은 441억7900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3.5% 감소했다. 전년 동기 대비 수출액 감소 폭은 2016년 1월 이후 가장 컸다. 국내 주력 수출품인 반도체(-25.5%)와 석유화학(-24.5%)·석유제품(-24.2%)의 수출액 감소가 두드러졌다. 관련 제품 업황이 부진한 데다 제품 단가가 급락하다 보니 이 같은 결과가 빚어졌다.

주력 제품 수출이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이유는 장기전으로 치닫는 미·중 무역분쟁 탓이다. 6월 중국으로의 수출은 24.1% 줄어 금융위기(2009년 5월) 이후 최악을 기록했다. 미국으로의 수출 역시 2.5% 감소했다.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무역전쟁을 멈추기로 합의했지만 시장에선 일시적인 ‘휴전’일 뿐일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반도체 수출 -25% 유화 -24% … 일본 보복 발표에 더 암울

안소은 IBK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올 하반기에도 무역분쟁은 국내 수출 경기를 좌우할 요인이 될 것”이라며 “미·중 협상이 진행되곤 있지만 추가 관세 공격을 배제할 수 없는 불확실성 탓에 국내 제조업체들의 수출 전망은 다시 낮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엎친 데 덮친’ 격은 일본 변수다. 도현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일본의 수출 규제로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의 반도체 생산에 큰 차질이 발생할 전망”이라고 예상했다. 한국의 수출 ‘효자’인 반도체는 수출이 감소세로 돌아선 지 오래다. 8기가비트(Gb) D램 평균 가격이 전년 고점 대비 60%나 하락하는 등 시장 상황도 좋지 않다. 글로벌 기업들의 데이터센터 재고 조정, 스마트폰 수요 하락에 더해 최근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일본의 경제보복 조처까지 겹치면 수출은 더 악화할 수 있다. 경기가 하강하고 있는 상황에서 또 다른 짐이 생긴 셈이다.

문제는 정부가 뾰족한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우선 수출 부진이 대내 변수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기 위한 추가경정예산(추경) 집행 등 재정 효과에 기대는 모습이다. 또 이날 오후 성윤모 산업부 장관 주최로 ‘수출상황점검회의’를 열어 수출 기업에 대한 자금 공급 확대, 신남방·신북방 신시장 개척 등의 대책을 발표했지만 성과가 나타나기엔 시간이 필요한 중·장기 대책이 대부분이다.

전문가들은 해외 기술 종속을 탈피할 핵심 소재 기술 개발에 속도를 높이는 동시에 새로운 무역 질서의 패러다임 변화에 대처하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당장 수출 부진에서 벗어날 수 있는 단기 대책과 근본적인 수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장기 대책을 구분해 짜임새 있는 대책도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반도체 핵심 소재를 일본에만 의존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현실이기 때문에 핵심 소재 조달처부터 다변화할 필요가 있다”며 “미·중 관계가 개선될 가능성은 매우 낮기 때문에 양국 중심으로 나뉜 새로운 통상질서가 형성될 가능성에 대비해 산업 생태계 전반의 근본적 전환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종=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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