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막아놓고 제조업 르네상스? 문제는 규제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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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삼성전기 부산공장 클린룸 전경. [연합뉴스]

삼성전기 부산공장 클린룸 전경. [연합뉴스]

# 디스플레이 관련 제품을 생산하는 A사는 최근 신성장 기술설비에 투자하고 세액공제를 받고자 했으나 마음을 접어야 했다. 신성장 설비투자로 세액공제를 받으려면 규정상 전체 연구·개발(R&D) 비용 중 신성장 부문의 R&D 비용이 10%를 넘어야 하는데 그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A사의 재무팀 담당자는 “기존 R&D 비용이 너무 커 새로운 투자분야인 신성장 R&D 부문을 기준까지 높일 수 없었다”며 “이러한 규제가 투자를 가로막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상의, 94개 세법 문제 정부에 전달 #선진국 공제 늘릴 때 한국만 역행 #혜택 줄이며 말로만 “신성장 투자”

# 물류 대기업 C사는 2017년 생산성 향상시설에 2900억원 투자해 80억원 공제받았다. 그러나 지난해에는 비슷한 규모인 2800억원을 투자했지만 공제받은 금액은 28억원 수준에 불과했다. C사 회계부서 담당자는 “세액공제율이 갈수록 줄면서 향후 시설투자 확대 유인이 낮아진 것은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문재인 정부가 지난달 제조업을 다시 활성화하겠다는 취지에서 ‘제조업 르네상스’를 주창했지만 기업의 투자를 가로막는 규제는 여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업 투자를 활성화할 수 있는 세법개정 없이는 제조업 르네상스 구상도 공염불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대한상공회의소는 1일 ‘2019년 조세제도 개선과제 건의문’을 정부와 국회에 제출했다. 기업의 과감한 투자를 끌어낼 수 있는 조세 환경을 마련해달라는 제언이 담겨 있다. 20대 국회 들어 상의가 국회와 정부에 제출한 16번째 건의다. 상의의 이번 건의안에는 ▶신성장 시설투자 세제지원 요건 완화 ▶신성장 R&D인정범위 확대 ▶R&D 세액공제율 인상 등 94개 과제가 담겼다.

상의는 ‘신성장기술 사업화 투자 세제지원제도’의 공제요건 완화를 건의했다. AI, 자율주행차 등 173개 신성장기술에 투자하는 R&D 비용에 대해 투자액의 5∼10%를 세액공제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그러나 현행 공제요건은 매출액 대비 전체 R&D 비중이 2% 이상이어야 하고 전체 R&D 대비 신성장 R&D 비중이 10% 이상이어야 하는 등 조건이 까다롭다.

A사 사례처럼 산업 현장에선 조건 충족 자체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목소리가 높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2017년 신성장 R&D 세액공제 신청기업 수는 일반 R&D 신청기업(3만 3614개)의 0.66%에 불과한 224개인 것으로 조사됐다. 신성장기술 사업화 투자 세제지원제도가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해가 바뀔수록 줄어드는 일반 R&D세제지원도 문제다. 2013년 대기업 기준 최대 6% 수준이었던 일반 R&D투자에 대한 세액공제율은 지난해 최대 2%로 축소됐다. 5년 만에 3분의 1 수준으로 급감했다.

김현수 대한상의 기업정책팀 팀장은 “경쟁국인 영국(최대 11%), 일본(최대 14%), 프랑스(연간 1억 유로까지 30%)에서는 일반 R&D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를 확대하는 추세”라며 “일반 R&D 세액공제율을 당기 발생액 기준의 3∼6%, 증가액의 40%까지 상향해줄 것을 제안했다”고 설명했다.

그나마 이러한 혜택도 이르면 올해가 마지막이 될 전망이다. 생산성향상시설 투자 세액공제는 올해 말, R&D, 에너지절약시설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는 2021년 일몰 예정이기 때문이다. 상의는 올해 말 일몰 예정인생산성향상시설과 안전설비 등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제도를 2021년 말까지 연장해 달라고 요청했다.

오원석 기자 oh.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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