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20~21일 방북했던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에게 “비핵화 의지는 변함이 없다”는 뜻을 알렸다고 청와대가 27일 밝혔다. 시 주석은 이날 오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일본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과의 양자회담(오사카 웨스틴호텔)에서 이런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고 대변인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시 주석에게 “새로운 전략적 노선에 따른 경제발전과 민생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고 외부환경이 개선되기를 희망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문 대통령과 40분 오사카 회담 #화웨이·사드 관련 ‘우회 압박’ #문 대통령 “미국·중국 모두 중요 #한쪽만 선택하는 상황 안 오길”
김 위원장은 “대화를 통해 이 문제를 풀고 싶고, 인내심을 유지해 조속히 합리적 방안이 모색되길 희망한다”며 “한국과 화해 협력을 추진할 용의가 있으며 한반도에서의 대화 추세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뜻도 함께 전달했다. 시 주석은 이어 “북·미 3차 정상회담을 지지한다”며 “북·미가 유연성을 보여 대화가 이뤄지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고 고 대변인이 전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시 주석과 김 위원장의 회담과 북·미 친서 교환 등은 북·미 대화의 모멘텀을 높였다고 생각한다”며 “북·미 간 조속한 대화가 이뤄지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중국중앙방송(CC-TV)은 이날 한·중 회담과 관련, “시 주석이 중·한 협력은 완전한 상호이익과 윈윈 관계로, 외부압력의 영향을 받아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고 보도했다. ‘외부 압력’은 중국 통신업체 화웨이(華爲)와의 거래 금지 등을 요구하는 미국의 대중 제재에 대한 우회적인 표현으로, 한국 정부가 이에 동참하지 말라는 요구로 풀이된다.
CC-TV에 따르면 시 주석은 “한국은 양국 사이의 유관 문제를 계속 중시해 원만하게 처리하길 희망한다”고도 밝혔다. 시 주석은 지난해 11월 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THAAD·사드)를 ‘민감한 문제’로 표현했는데 이번엔 이를 수위를 낮춰 ‘유관 문제’라고 거론했다. 그럼에도 시 주석이 사드 철회 요구를 빠트리지 않았고, 미·중 무역전쟁 와중에 ‘외부 요인’을 거론했다는 점에서 한국을 상대로 미국의 반중 노선에 동참하지 말라는 중국 입장을 재확인한 것으로 해석된다.
시 주석은 이틀 후인 29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미·중 무역분쟁 담판이 예정돼 있다. 시 주석은 또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신 실크로드) 공동 건설의 기회를 잡고, 중·한 자유무역협정 2단계 담판을 빨리 하고, 무역·과학기술·금융·환경보호 등 영역에서 협력을 끊임없이 확대하자”며 한·중 경협 강화도 제안했다.
청와대는 사드 문제에 대해 “사드와 관련한 해결 방안들이 검토되기를 바란다는 취지의 (시 주석) 발언이 있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문 대통령은 “사드는 비핵화 문제와 연동돼 해결돼야 한다”고 답했다.
시진핑 “김정은 비핵화 의지 변함 없어”
청와대 관계자는 “비핵화가 선행돼야 사드 문제가 풀린다는 ‘선후 관계’의 발언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고 대변인은 “(회담에서) 화웨이라는 말은 아예 언급이 없었고, 5G에 대해서는 원론적 얘기만 나왔고 문 대통령은 이를 청취했다”고만 말했다. 다만 시 주석은 무역에 대한 일반론을 먼저 꺼내며 “다자무역 체제는 보호돼야 한다”고 언급했다고 한다. 이에 문 대통령은 “미국과 중국은 한국에 1·2위 교역국으로 모두 중요하다”며 “어느 한 나라를 선택하는 상황에 이르지 않기를 바란다. 원만히 해결되기를 희망한다”고 답했다.
문 대통령은 중국발 미세먼지와 관련해 “양국민 모두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으니 양 정부가 함께 협력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만으로도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 주석은 “적극 협력해 나가겠다”면서도 “중국은 환경보호에 대해 (과거에 비해) 10배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답했다.
문 대통령은 끝으로 “빠른 시일 안에 방한해 달라. 이는 한국 국민에게 양국 관계 발전에 큰 기대를 줄 것”이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시 주석은 “각국의 사정을 고려해 구체적 시간은 외교 당국을 통해 협의하자”고 말했다. 회담은 예정보다 10분 길어진 40분간 진행됐다. 이번 한·중 정상회담은 지난해 11월 파푸아뉴기니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이후 7개월 만으로, 문 대통령 취임 이후 다섯 번째다.
한편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시 주석은 27일 저녁 회담을 갖고 양국 화해 기조를 다졌다. 아베 총리가 “내년 봄 벚꽃이 필 때쯤 시 주석을 국빈으로 모시고 싶다”고 제안하자 시 주석은 “아주 좋은 아이디어다. 구체적인 시기를 협의하자”고 화답했다.
오사카=강태화 기자·서승욱 특파원,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thka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