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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에 사랑 빠진 건달, 판타지만은 아니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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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건달 세출(김래원)과 변호사 소현(원진아)의 첫 만남 장면. [사진 메가박스중앙 플러스엠]

건달 세출(김래원)과 변호사 소현(원진아)의 첫 만남 장면. [사진 메가박스중앙 플러스엠]

“요리로 치면 재료가 풍성했죠. 한 여자를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려놓고 좋은 사람이 되겠다는 순수한 목표로 정치판에 뛰어든다는 게, 조폭이란 전사를 다 잊을 만큼 매력적이었어요. 주변에 이런 사람이 있다면 어떨까 상상하며 영화를 만들었죠.”

영화 ‘롱 리브 더 킹’ 강윤성 감독 #17년 무명 씻고 ‘범죄도시’ 히트

2년 전 데뷔작 ‘범죄도시’로 큰 흥행성공을 거둔 데 이어 웹툰 원작 새 영화 ‘롱 리브 더 킹: 목포 영웅’을 내놓은 강윤성(48) 감독의 말이다.

19일 개봉한 이 영화는 조폭 두목 장세출(김래원)이 변호사 강소현(원진아)의 마음을 얻으려 개과천선, 국회의원까지 출마하는 여정을 코믹하게 그렸다. 영화 첫머리에 세출은 재래시장 재건축 반대 시위를 진압하러 갔다가, 상인들을 돕던 소현에게 따귀를 맞고 단박에 반한다. 순정만화 같은 판타지적 장면이다.

“현실에서도 사랑은 1초 만에도 빠질 수 있잖아요.” 강 감독의 항변이다. 낭만적인 구석이 의외라고 하자 그는 19세기 배경의 진한 러브스토리 ‘러브 오브 시베리아’를 ‘인생 영화’로 꼽았다. “이야기란 이런 것, 사람의 감정이란 이런 것이라 생각하게 되는 저만의 영화 교과서죠.” 그는 이번 영화를 “조폭이지만 동화처럼 착한, 한 인물의 성장기이자 멜로”라고 했다.

강윤성 감독

강윤성 감독

전작의 큰 성공에 부담감도 있었을 터. 그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개봉 일주일 전부터 살이 떨리더라”고 했다. 첫 시사를 앞두고 소장에 생긴 혹과 맹장을 잘라내는 수술을 받기도 했다. “액땜했다고 생각해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웃는 여유는 그동안 수없이 좌절을 경험한 데서 얻은 것이라고 했다.

“시나리오는 수도 없이 썼어요. 맨 처음은 미국 유학 시절 동명 만화를 토대로 쓴 ‘바벨 2세’ 영문 시나리오였죠. 서른 살에 한국에 들어와 데뷔하려던 공포영화 ‘뫼비우스’도 1년 만에 투자에 문제가 생겼죠. 영화가 엎어질 때마다 내가 열심히 안 했기 때문이야, 하며 더 열심히 썼어요. 먹고 살기 위해 홍보영상 작업 등을 하며 현장을 컨트롤하는 건 전혀 두렵지 않게 됐죠.”

2년 연애 끝에 결혼한 아내는 1년만 기다리면 그가 데뷔할 줄 믿었단다. “근데 17년 걸렸죠. 아내와 삼청동·광화문에서 6년 정도 신발가게, 옷가게 한 게 나름 잘 됐어요. 7.5평 공간에 매일 갇혀있는 게 너무 힘들다고 해서, ‘범죄도시’ 2년째 준비하던 때쯤 가게를 접었죠.”

세계적 게임사 EA·액티비전 등에서 활동해온 아트디렉터 제니 류는 그의 누나. 남매는 미국 샌프랜시스코의 같은 학교에 차례로 유학했다.

그는 “스물여덟에 미국에서 차렸던 영상제작사 이름이 ‘4 엔터 필름스’라고, ‘당신의 즐거움을 위하여(for your entertainment)’의 약자였다”며 “그때부터 한결같은 꿈이 재미난 영화를 만드는 것”이라 했다. “제가 잘하고 좋아하는 스릴러·범죄·액션 말고도 멜로나 뮤지컬 등 계속 공부하고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이번 영화 엔딩에는 뮤지컬 같은 장면이 나온다. 김동률의 감미로운 노래 ‘사랑한다는 말’을 우락부락한 조폭, 악당들이 이어받아 부른다. “관객들이 웃으며 극장을 나서길 바랐죠.”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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