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책은 유튜브와 달라…직육면체 속에 세계가 있고, 인간이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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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한강. 박종근 기자

소설가 한강. 박종근 기자

"결국 인간 내면 끝까지 들어가 볼 수 있는 매체는 문학이라고 생각해요" 

소설가 한강(49)이 디지털 시대 문학과 종이책이 외면받지만 결국 우리에게 다시 돌아올 것이라 내다봤다. 19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국제도서전 주제 강연에서다. 소설 『채식주의자』로 2016년 세계 3대 문학상인 맨부커상의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한 한강 작가는 한국 대표 작가로 꼽힌다.

한강 작가는 이날 '영원히 새롭게 출현하는 것들'이라는 주제로 대중 앞에 섰다.

그는 이날 강연에서 "요즘 가장 뜨거운 매체가 유튜브라고 한다. 편리하기도 하지만 그 매체가 어디까지 깊게 들어가 볼 수 있는지 의문"이며 문학과 종이책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이어 "유튜브 다음에 (새로운 매체로) 종이책이 올 거라고 하면 주변에선 너무 낙관적이라고 본다"면서도 새로운 것을 다루는 문학과 종이책이 결국 우리에게 새롭게 출현해 올 것이라고 보았다.

세대가 바뀌고 시간이 흘러도 결국 인간의 삶과 죽음, 고통, 사랑, 슬픔 등은 우리에게 영원히 새로운 주제이기 때문에 문학이 계속 출현할 수밖에 없고, 종이책도 그러리라 믿는다는 것이다.

한강 작가는 "사람들이 모니터 속에 존재하는 이미지들이 아니라 손으로 만질 수 있고 감촉이 있는 매체를 그리워하고 있지 않나. 아날로그, 정말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그런 것에 굶주려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책을 펼치고, 귀퉁이를 접고, 밑줄을 긋고, 집에 꽂아두고, 20~30번 반복해 읽을 수 있고 눈도 안 아픈 매체를 점점 그리워하고 있다"며 "나중에는 책을 사랑하는 취향이 아주 특별한 것이 돼 연대의식을 갖고 뭔가를 공유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했다.

그는 종이책에 대한 애정도 강하게 드러냈다. "제가 책을 쓰는 사람이고 평생 책 속에 살았기 때문에 책을 편애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책은 목차를 보고 내용을 파악하고, 당장 필요한 부분은 페이지를 찾아볼 수 있고, 한 페이지를 계속 보는 등 영상보다 편리하다"고 밝혔다.

한강 작가는 전자책(이북·e-Book)을 시도해봤지만, 분량이 얼마나 남았는지에 대한 감각이 없어서 좋지 않았다며 아쉬움을 내비쳤다. 그는 "소설이라는 것은 전체 레이아웃을 보며 읽다가 앞으로 돌아가 보기도 하고, 디자인 자체도 많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종이책에는 이북으로 대체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있다"며 종이책의 강점을 소개했다.

아울러 과학과 기술의 발전으로 증강현실이 펼쳐지는 시대에서도 문학과 종이책의 의미는 그대로 남아있다며 "우리가 증강현실을 경험하며 오감을 자극할 수는 있지만 누군가의 내면으로, 감정 속으로, 영혼으로 들어갈 수 없다. (그러나) 문학 작품은 어떤 인간의 내면의 끝까지 들어가 볼 수 있는 매체"라고 말했다.

가방에 책 1권 이상을 가지고 다닌다는 한강 작가는 "직육면체의 책 속에, 커버로 닫힌 세계 속 세계가 있고, 인간들이 있다"며 "책에는 언어만 만나는 게 아니라 만지고, 줄을 긋고 하는 육체적인 만남도 있기에 모든 순간이 소중하다. 언제나 특별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한편 서울국제도서전은 국내 최대 책 축제이자 한국과 세계가 책으로 만나는 플랫폼으로, 41개국 431개사가 참여하는 행사다. 19일 개막한 도서전은 오는 23일까지 열린다.

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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