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롱에 신상털기까지···'잔혹 살인' 고유정 향한 어긋난 분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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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다영 사회팀 기자

김다영 사회팀 기자

전 남편을 잔인하게 살해하고 시신까지 훼손한 고유정(36)에 대한 분노가 거센 가운데 근거 없는 ‘고유정 관련설’ 탓에 피해를 입는 업체까지 나타나고 있다. ‘제주아산렌트카’가 대표적이다. 인터넷에 ‘고유정이 근무했던 회사가 이름을 바꿔 버젓이 영업하고 있다’는 글들이 올라왔고, 이 회사로 고객들의 항의전화가 끊이질 않았다고 한다. “사실이 아니다”고 응대해봤지만 소용 없었고, 결국 이 회사 대표는 경찰에 허위사실을 유포한 이들을 처벌해달라는 고소장을 제출했다.

고유정의 얼굴과 나이가 공개된 이후 온라인상에는 고유정의 졸업사진과 함께 출신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 명단도 돌았다. 또 고유정 현 남편의 사생활이 담긴 이야기까지 무분별하게 퍼지면서 고유정의 가족들은 ‘살인자의 가족’이라는 사회의 손가락질을 여과 없이 받아내고 있다. 특히 이번 사건에서는 과거와 달리 피해자에 대한 신상털기까지 발생하고 있다.

흉악범 본인에 대한 신상털기는 신상공개 제도를 논의할 때부터 예상돼왔다. 그러나 범죄 피해자인 전남편(36)의 출신학교와 그 가족들에 대한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무분별하게 돌아다니는 것은 또다른 차원의 문제다. 공개된 피해자의 개인정보를 이용한 추측성 범죄 시나리오가 마치 사실인 듯 온라인을 떠돌고 있다. 특히 일부 댓글과 극단적 페미니스트 성향의 사이트에서는 이 정보를 이용해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을 조롱하는 발언까지 서슴없이 하고 있다.

지난 2016년 안산 토막살인 사건의 범인 조성호(33)의 신상이 공개된 뒤 조성호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네티즌들의 공격을 받음과 동시에 전 여자친구의 신상까지 온라인에 확산하는 등 2차 피해가 발생했다. 이에 따라 경찰 수사팀에서는 얼굴공개 뒤 발생하는 피해를 막기 위해 피의자 가족보호팀을 꾸려 대응하고 있다. 고유정에 대해서도 제주 경찰은 피의자 가족보호팀을 꾸려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 경찰이 흉악범 본인에 대해 과잉보호를 한다면 문제가 될 수 있지만, 얼굴공개에 따른 연좌제 부작용을 막기 위해 흉악범 가족에 대해 소극적 차원의 보호를 하는 것은 필요해 보인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필요한 것은 누구보다 보호받아야 할 피해자 가족들의 신상털기 피해를 막는 것이다. 이를 위해 경찰의 적극적 대응이 필요하다. 현재 경찰은 피해자 보호법에 따라 피해자나 피해자 가족들에 대한 법률적·심리적·물리적 지원 등을 해주고 있다. 이 제도를 활용해 피해자 가족에게 발생할 수 있는 신상털기 피해에 대해 민·형사적 구제 방안을 제시해 피해자 가족들의 2차 피해를 최소화 해야 한다. 관련 없는 기업 등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 역시 마찬가지다.

나아가 법개정 논의도 필요해 보인다. 현행법상 명예훼손과 모욕죄는 피해자의 고소가 없으면 처벌할 수 없다. 끔찍한 범죄로 가족을 잃은 피해자 가족들이 신상털기 가해자를 일일이 찾아내 고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범죄 피해자에 대한 도를 넘는 개인정보 유포와 모욕적 행위, 관련 없는 이들에 대한 허위 사실 유포에 대해 엄중히 처벌할 근거를 마련함으로써 흉악범 얼굴공개에 따른 부작용을 줄여나갔으면 한다.

김다영 사회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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