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우리집 서열 1번이 외출하면 생기는 일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강인춘의 웃긴다! 79살이란다(29)

[일러스트 강인춘]

[일러스트 강인춘]

우리 집엔 언제부터인가 허물 수 없는 서열이 존재한다.
1번 - 마누라
2번 - 쫑(동거 견)
3번 - 나

젊어 한때는 서열 1번으로 호기 만장했던 내가
어쩌다 마지막 3번으로까지 밀려났는지
생각만 해도 이놈의 세월이 원망스럽다.

각설하고,
오늘은 1번님께서 여고 동창 점심 모임이 있다고 하면서
밖으로 휭~ 하니 외출을 했다.
닭 쫓던 개 지붕만 쳐다보듯이 2번 녀석과 3번 나는 서로 얼굴만
맹숭맹숭 쳐다만 보다 제풀에 기가 팍 죽었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2번보다는 3번인 내가 더 팍팍 죽어 있었다.

그런데도 주제 파악을 하지 못하는 3번 나는 2번 녀석한테 돌직구를 던진다.
“얀마! 2번! 너, 그동안 1번 백만 믿고 나한테 폼 잡았었지? 오늘 꼴좋다.”
그러나 2번은 피식 웃으며 곧장 반격을 해왔다.
“웃겨! 나보다도 3번 네가 더 풀 죽었다고 얼굴에 쓰여 있는데? ㅋㅋㅋ”

역시 2번은 비상한 놈이다.
어찌 내 마음속에 감춰진 생각을 귀신같이 알아챘을까?
하긴 1번으로 인해서 기(氣)죽었던 나를 생각하면
당장에라도 팔딱 일어나 ‘자유의 몸’이라고 휘파람 불며
온 집안을 휘젓고 다녀야 마땅한데 웬일인지 2번 녀석과 똑같이
나란히 엎드려 있다니…. 쯧쯧쯧!

그래, 결국 나 3번은 1번 없이는 하루도 못 사는
서글프고 가련한 그런 불쌍한 인간임이 틀림없다.
이걸 어째…….

강인춘 일러스트레이터 theore_creator@joongang.co.kr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