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한마디, 장미 가시처럼 가슴을 콕콕 찌른다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더,오래] 강인춘의 웃긴다! 79살이란다(28)

[일러스트 강인춘]

[일러스트 강인춘]

잠자리에서 눈을 떴다.
아직은 이른 새벽이다.

현관문을 열고 바닥에 떨어져 있는 신문을 주워들었다.
그리고는 곧장 화장실로 들어갔다.
변기에 얼마나 오래 앉아 있었을까?
신문의 마지막 장까지 꼼꼼하게 읽고 난 나는
변기 꼭지를 눌러 물을 내리고 거실로 나왔다.

그리고는 천천히 베란다 문을 열고 나가면서 활짝 핀 꽃들과 눈을 마주쳤다.
‘날도 밝지 않았는데 왜 벌써 일어나셨어요?’
화초들이 새벽부터 바지런을 떠는 나에게 핀잔을 준다.
다시 거실로 들어왔다.
마누라가 자는 안방에선 아직도 기척이 없다.
어제 밤늦도록 옷장 정리를 하더니 피곤했나 보다.

“오늘 하루는 또 무엇으로 시간을 죽이지?”

엊저녁 저녁 먹으면서 마누라가 잔소리처럼 내뱉은 말이
이 새벽까지 지워지지 않고 다시 귀청을 간질인다.

할 일 없이 집안에서만 소일하기보단
학교 동창, 친한 친구, 퇴직사원 모임 같은데도 빠지지 말고
부지런히 돌아다녀 봐요. 사람은 움직여야 건강해진대.
더구나 남자는 여자와 달리 집안에서만 줄곧 있으면 병 생긴대.
내가 당신 빈둥거리는 거 보기 싫어 잔소리하는 거 아니야.
잔소리하는 거 아니야.
잔소리하는 거 아니야.
.............

이상하다!
그런데도 마누라의 저 예쁜 말들이
왜 장미 가시처럼 내 살갗을 아프게 콕콕 찌르는 걸까?

강인춘 일러스트레이터 theore_creator@joongang.co.kr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