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발살해'라는 고유정, 청주서 시신 훼손용 흉기도 챙겨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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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남편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유기한 혐의로 구속된 고유정이 범행 사흘 전인 지난달 22일 오후 11시께 제주시내 한 마트에서 흉기와 청소용품을 사고 있다. [사진 제주동부경찰서 제공]

전 남편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유기한 혐의로 구속된 고유정이 범행 사흘 전인 지난달 22일 오후 11시께 제주시내 한 마트에서 흉기와 청소용품을 사고 있다. [사진 제주동부경찰서 제공]

‘제주 전 남편 살인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이 사건 발생 2주가 다 되도록 정확한 범행 동기를 밝히는 데 애를 먹고 있다. 피의자 고유정(36)이 "전 남편이 성폭행하려 했기 때문"이라며 우발적 범행을 주장하고 있어서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범죄로 보고 수사를 이어가도 있다. 고유정은 “남편이 성폭행을 하려 했고, 이를 막기 위해 수박을 자르러 산 칼을 이용해 우발적으로 일을 저질렀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22일 마트에서 미리 흉기·청소도구 구입 #"수박 썰다 전 남편 우발적으로 살해" 주장 #경찰은 완전 범죄 노린 계획범으로 수사 중

 고유정은 지난 27일 오후 제주시 모 호텔 근처에서 살해한 남편의 휴대전화를 이용해 자신의 전화에 ‘성폭행 하려한 것 미안하고, 고소하지 말아달라’는 취지의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경찰은 이 행동이 전 남편이 그때까지 살아있었다는 가짜 증거 등을 만들 목적으로 보고 있다. 철저히 계획된 완전범죄를 노렸다는 분석이다. 고씨가 강씨를 만나기 전 ‘니코틴 치사량’ ‘살인 도구’ 등을 다수 검색하고 미리 흉기를 준비한 점도 계획범죄임을 보여주는 증거고 보고 있다.

경찰은 범행 사흘 전인 지난달 22일 오후 11시쯤 제주 시내 한 마트에서 고씨가 식칼과 표백제, 고무장갑, 세제, 청소용 솔 등을 구매하는 장면이 담긴 폐쇄회로TV(CCTV)를 공개했다. 고유정은 지난달 18일 청주에서 제주로 올 때 시신을 훼손하기 위한 흉기를 미리 가지고 온 점도 계획범으로 무게가 쏠리는 이유다.

180㎝의 전 남편보다 작은 체격(160㎝)의 고유정이 어떻게 남편을 제압했는지도 의문이다. 경찰이 애초 약독물 살해 가능성을 높게 본 이유다. 하지만 검사 결과 피해자의 혈흔에서 약독물이 검출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 고씨의 범행 수법에 대한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 경찰관계자는 “혈흔으로 약독물 존재 여부를 제대로 판별하려면 양이 충분해야 하는데, 현재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며 “국과수에서 재검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유정

고유정

오윤성 순천향대 교수(경찰행정학과)는 “유족들의 주장으로 미뤄볼 때 고씨는 이혼한 뒤에도 강씨에게 아들을 보여주지 않는 등 심리적으로 괴롭힘을 주려 했던 것으로 추측된다”며 “아들 양육권을 잃게 됐을 경우 강씨를 조종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될 수 있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경찰은 지난 3월 2일 충북 청주의 한 아파트에서 고씨의 네 살배기 의붓아들이 숨진 사건에 대해서도 수사 하고 있다. 숨진 아들은 현 남편 A씨가 전처 사이에서 낳은 자녀다. 고씨와 재혼한 남편은 모두 제주도 출신이다. A씨는 제주도 친가에 살던 아들을 지난 2월 28일 청주로 데려왔다. A씨는 당시 경찰 조사에서 “자고 일어나 보니 아이가 죽어 있어 신고했다”고 진술했다. 사인을 조사한 경찰은 최근 “질식에 의한 사망일 가능성이 있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결과를 받았다.

그러나 뚜렷한 타살 혐의점을 찾지 못한 상황이다. 경찰은 이 사건이 고씨의 범행동기를 밝히는 중요한 단서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청주상당경찰서 관계자는 “고씨의 의붓아들이 숨진 원인을 밝히기 위해 추가 조사를 벌였다”며 “사건 당일 고씨 부부의 행적을 어느 정도 파악한 상태”라고 말했다.

이수정 경기대 교수(범죄심리학과)는 “범행의 잔인한 수법으로 볼 때 고유정은 이혼 후에도 전남편에 대한 적대감이 높았던 것 같다”며 “현재의 혼인 관계에 있는 남편의 자녀가 의문사하면서 결혼 생활에 불화가 생겼고, 이런 갈등의 원인이 전 남편과 이혼하면서 벌어진 일 때문이라는 피해의식이 범죄행위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제주·청주=최충일·김준희·최종권 기자 choi.choongi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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