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웨이, 韓부품 12조원 수입…미·중 난타전에 국내기업 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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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업 앞에 선택할 수 없는 문제 놓여"

미국과 중국이 '관세 폭탄'과 '(화웨이 등) 특정 기업과 거래 중단' 등 난타전을 벌이면서 한국 정보기술(IT) 업체들의 긴장 수위도 높아지고 있다. 법무법인 린의 구태언 테크앤로 부문장(변호사)은 3일 "이번 다툼은 중국의 경제 대국화를 막고 기술 패권을 유지하고 싶은 미국의 입장과, 미국의 견제를 국가주의에 입각한 부당한 처사로 여기며 향후 첨단 분야 기술자립을 좌우할 문제로 보는 중국의 입장이 부딪히는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양 측이 모두 한국 IT 기업들에 '자기 편에 설 것'을 요구하지만 한국 기업으로서는 어떤 선택도 결정도 하기 어려운 난제"라고 말했다.

“트럼프 트윗에 언급되면 사업 끝” #IT 업체들 미·중 사이 딜레마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에 우리 회사 이름이라도 한번 언급하면, 그 순간 사업은 끝이다. 미·중 무역전쟁과 관련해선 회사 이름조차 언급하지 말아달라."

국내 정보기술(IT) 업체 한 고위 임원이 3일 털어놓은 이같은 말에 미국과 중국 사이에 낀 한국 IT업계의 난처한 입장이 그대로 녹아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한국의 화웨이 통신장비 수입, 연 5000억원 미만

한국의 입장은 수출입 구조를 보면 한눈에 파악된다. 국내 통신업계가 화웨이로부터 수입하는 통신장비는 5G(이동통신) 등 무선과 유선을 합쳐 연간 5000억원을 넘지 못한다. 반면 화웨이가 한국에서 수입하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부품은 연간 12조원어치가 넘는다. 미국이 화웨이 통신장비를 쓰지 말것을 종용한다고 해서 선뜻 동참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양 측 싸움에 가장 입장이 복잡한 회사는 삼성전자다. 이재용 부회장이 토요일인 지난 1일 고위 임원들을 긴급 소집해 '장기적 근원적 경쟁력'을 강조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삼성전자는 미국의 화웨이 제재가 단기적으로는 스마트폰과 통신장비 분야에 호재일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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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중장기적으로는 웃을 수만은 없다. 삼성전자는 올 1분기 사업보고서에 주요 고객으로 미국의 애플·AT&T·버라이즌과 함께 중국의 화웨이, 독일의 도이치텔레콤 등을 꼽았다. 이들 기업에 대한 공급량이 전체 매출의 14%라는 수치도 공개했다. 화웨이 제품의 판매량이 줄면 삼성전자의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의 매출도 그만큼 빠진다는 의미다.

지난달 미중 무역협상의 시한연장을 알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

지난달 미중 무역협상의 시한연장을 알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

반도체 글로벌 공급체인 무너질 땐 2차 피해

걱정은 또 있다. 반 화웨이 전선이 글로벌 공급 체인에 근본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 마이크론의 경우 반도체 생산량 중 13%를 화웨이에 공급한다. 거래 제한으로 남아도는 이 물량이 시장에 저가로 풀린다면 가뜩이나 수요가 줄고 있는 반도체 시장에서 가격 급락이 올 가능성이 높다. 실제 글로벌 반도체 시장조사기관인 디램익스체인지는 지난달 D램 고정거래 가격이 개당(DDR4 8Gb 기준) 3.75달러로 전달보다 6.25% 하락했다고 3일 밝혔다.D램 고정거래가가 4달러 아래로 떨어진 것은 2년8개월 만이다.

SK하이닉스도 입장이 비슷하다. SK하이닉스는 올 1분기 매출(6조7700억원)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47%(3조1600억원)를 중국 시장에서 올렸다. 전년 동기와 비교하면 10%포인트나 오른 수치다. SK하이닉스는 중국 우시와 충칭에 반도체 생산 라인을 운영하고 있고, 현지 자회사만 13개에 달한다. 이렇게 중국 의존도가 높아진 상황에서 무역 분쟁에 휘말릴 경우 득보다 실이 클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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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웨이 통신 장비를 사용하고 있는 이동통신업계도 사태 추이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5G 무선망에서 화웨이 장비를 사용 중인 LG유플러스 측은 3일 "아직 (화웨이 부품) 배제 조치는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통 3사는 최근 통신 재난 사태에 대비한 유선망 이원화 작업을 진행하면서 화웨이 부품을 주문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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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사드 사태' 안되도록 조용하고 치밀한 전략 필요 

구 변호사는 “반도체·디스플레이부터 통신장비·게임까지 중국과 연관성이 많은 IT업계는 물론, 사드 보복의 직격탄을 맞은 자동차·유통업계 등 사실상 국내 모든 산업이 미·중 무역전쟁 영향 아래 있다"며 "국내 업체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정부와 업계가 조용하면서도 치밀한 대응 전략을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태희 기자 adonis5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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