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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하는 헝가리인, 조롱하는 한국인···서글픈 다뉴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일(현지시각) 부다페스트 다뉴브강 머르기트 다리 아래에서 한 헝가리 여성이 꽃을 던지며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부다페스트=박태인 기자

2일(현지시각) 부다페스트 다뉴브강 머르기트 다리 아래에서 한 헝가리 여성이 꽃을 던지며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부다페스트=박태인 기자

현장에서  

"몇 년전 한국에서도 이와 비슷한 사건이 일어났다고 들었어요"

사고 발생부터 세월호 언급하며 조롱 #"한국사회, 공감능력 잃어가고 있어"

한국인 33명과 2명의 헝가리인을 태운 유람선 허블레이니호가 침몰한 부다페스트 다뉴브강 머르기트 다리 아래. 2일(현지시각) 구조대의 수색작업 준비를 지켜보던 기자에게 40대 헝가리 부부가 "정말 안타깝다, 세월호 사건을 알고있다"며 위로를 건넸다.

그 옆에선 세 송이의 꽃을 들고 현장을 찾은 헝가리 여성이 작별인사를 건네듯 강물에 꽃을 흩뿌렸다. 다리를 떠나는 길가에서도 한 손에 꽃을 들고 머르기트를 찾는 헝가리인들과 계속해 마주쳤다.

이곳에선 사회의 공감과 위로, 애도의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지난달 31일 주헝가리 한국대사관에서 열린 추모식을 계획한 것도, 현장을 찾은 대부분의 사람들도 모두 헝가리인이었다.

2일(현지시각) 부다페스트 다뉴브강 머르기트 다리 아래(사고 현장)에서 한 헝가리 여성이 꽃을 들고 있는 모습. 부다페스트=박태인 기자

2일(현지시각) 부다페스트 다뉴브강 머르기트 다리 아래(사고 현장)에서 한 헝가리 여성이 꽃을 들고 있는 모습. 부다페스트=박태인 기자

한국처럼 실종·희생자 가족을 비난하거나 세월호 사건을 꺼내들며 또다시 유가족을 조롱하거나, '정부가 쇼를 한다.세금이 아깝다'거나 헝가리에서 한국 정부와 사람들이 민폐를 끼치고 있다는 등의 감당하기 어려운 독설과 댓글들을 찾긴 어려웠다.

한국 야당 대변인이 "골든타임은 기껏해야 3분"이라고 정부를 비난하는 동안 헝가리 외무부 장관은 "헝가리도 비슷한 트라우마와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다"며 희생자들을 애도했다. 현장을 취재하는 기자 역시도 헝가리인에게 위로받고 한국인에게 상처를 받았다.

작가 김훈이 말한대로 한국 사회가 악다구니와 욕지거리만 넘치는 "인간에 대한 경외심이나 연민, 다른 사람의 고통에 대한 감수성을 상실했다"는 지적을 부인하기가 어려웠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 사회에 조롱과 비하를 서슴지 않는 새로운 집단이 생겨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부다페스트 유람선 침몰현장인 머르기트 다리 아래 헝가리인들이 남기고 간 태극기(왼쪽)와 '진정으로 존중해'라고 적혀있는 듯한 한글 글귀. 부다페스트=박태인 기자

부다페스트 유람선 침몰현장인 머르기트 다리 아래 헝가리인들이 남기고 간 태극기(왼쪽)와 '진정으로 존중해'라고 적혀있는 듯한 한글 글귀. 부다페스트=박태인 기자

한국 사회의 조롱과 비난은 3일 시작될 정부의 수중수색 작업을 두고 점점 더 격화되는 상태다. 헝가리 정부가 잠수 요원들의 안전을 문제로 수색보단 인양을 선호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무리한 수색 작업을 벌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구조요원의 안전을 생각해서라기 보다 세월호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을 조롱하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현장에 있는 가족들은 "구조 요원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아달라"고 여러차례 강조했다. 2일 헬기를 타고 수색현장 70km를 둘러본 실종자 가족들은 "구조작업의 어려움을 이해한다"는 말을 전했다.

정부 당국자는 "가족들의 무리한 요구 때문이 아니다"며 "단 한번의 수색 시도조차 없이 선체를 인양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이라고 설명했다. 시신의 유실 가능성이 너무 높기 때문이다.

정부는 3일 작전에서 실패할 경우 헝가리 측의 인양 요구를 그대로 따르기로 했다. 세월호 수색 경험이 있는 한 잠수부는 "헝가리 측의 입장도, 수색 대원을 걱정하는 우려도 이해가 간다"며 "다만 도전을 해볼 가치가 없는 상황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정상적인 애도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트라우마는 한 개인과 사회의 커다란 상처를 남기는 경우가 많았다.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사무처장을 맡고 있는 오지원 변호사는 "우리는 참사로부터 교훈을 얻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며 "이번 사고로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이 다시 비난받는 것은 이들과 헝가리에 계신 가족분들 모두에게 큰 상처"라고 말했다.

오 변호사는 "사고 피해자들을 비난하며 고통의 순위를 경쟁시키고 이들의 고통에 '왜 국가가 나서야 하냐'는 비난의 부메랑은 결국 우리 자신에게 돌아올 가능성이 제일 높다"고 말했다.

부다페스트=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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