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세계바둑오픈' 해머로 내려치듯 떨어진 흑57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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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제8회 세계바둑오픈 32강전 [제3보(40-57)]

40으로 살자 쿵제는 노리던 41을 결행해 47까지 잡아둔다.인터넷 해설에 나선 김성룡7단이 "두텁습니다. 무섭게 두터운 수법이에요"한다. 쿵제는 힘을 잔뜩 비축하며 백△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백은 물론 뒤돌아보지 말고 삼십육계 줄행랑을 놓아야 할 때다.

그런데 이세돌9단의 50이 야릇하다.도망치는 척 하면서도 흑집을 기웃거리고 있지 않은가. 심한 수다. 이런 수는 모진 공격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세돌은 자신의 용맹을 믿고있다. 쿵제는 심사숙고 끝에 51로 다가선다. 중앙을 노리며 멀리서 꽹과리를 울리고 있다. 李9단은 반사적으로 52 붙였는데 53 젖히자 아차 하는 눈치다.

'참고도' 백1로 뻗으면 흑2로 민다. 백3 젖히지 못하면 바둑도 아닌데 흑은 즉각 4로 끊어올 것이다. 이때 응수가 없다. 그러나 이 그림에서 A와 B가 교환돼 있다면 백C가 성립한다. 실전의 54는 바로 그런 고충과 이유가 담긴 한 수였다. 그러나 흑55로 머리를 한방 강타해오니 중앙을 향한 연결고리가 끊어지며 백의 파워가 일시에 소멸되고 만다.

"아하!"하고 검토실은 탄식을 터뜨리고 있다."너무 아파요. 견딜 수 없읍니다."하는 외침도 이어진다. 잠시후 소소회의 젊은 프로들이 우려하던 바로 그곳(57)에 흑돌이 쿵 떨어졌다. 모니터에선 물론 소리없이 놓였지만 모든 관전객은 이 한수에서 해머로 내려치는듯한 충격을 받고있다.

이세돌9단이 발군의 신력을 지녔다고는 하나 고전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백은 이제 정처없는 유랑을 떠나야 하는데….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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