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곳마다 반미투쟁 주장|임수경양의 「북한27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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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난 6월30일 제13차 세계청년학생 축전참가를 위해 돌연 평양에 출현했던 전대협대연 임수경양의 북한생활은 ▲평축기간(1∼8일) ▲북한의 각 대학순방(9∼19일) ▲평화대행진·참가(20∼27일)의 세 단계에 걸쳐 진행했다. 지난달 30일 오후 1시30분 평양공항에 도착해 환영식으로 시작된 임양의 북한에서의 활동은 평축행사·대중집회·토론회·연회·기자회견·대학 및 산업시설 방문·관광 등으로 잠시도 쉴 틈 없는 강행군이었다.
임양은 첫날 내외신기자회견에서 평축참가 및 한반도 통일문제와 관련, 북한학생들과 협의하고 공동선언문을 채택할 계획으로 입북했음을 밝히고 백두산 등을 찾아본 뒤 판문점을 통해 귀환할 수 있도록 북한측의 협조를 요청했다.
북한이 「반제·연대성, 반전·평화」라는 구호를 내걸고 2년여에 걸쳐 45억달러로 추산되는 거액을 투입해 준비한 평축은 1일 임양의 단독입장으로 절정을 이루었다.
15만 군중이 『조국』 『통일』을 한 목소리로 외쳐대는 열광적인 소리는 김일성에 대한 환호를 능가한 것으로 평가되기도 했다.
김일성 생가인 만경대와 김일성 경기장에서 진행된 「5만명 대집단체조」에 참가한 다음날인 2일 임양은 평축참가자들을 위해 김일성이 주최한 환영리셉션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는 짐바브웨대통령무가베 등 명예손님과 김일성의 처 김성애, 인민무력부장 오진우, 총리 연형묵, 외교부장 김영남, 당비서 허담 등 북한고위인사들이 거의 모두 참석했으며 김일성은 입장식 당시 임양에게 「뜨거운 감사」를 표시한데 이어 또다시 임양의 참석을 평가했다.
평축 3일째인 3일 임양은 두 번째 기자회견을 갖고 ▲주한미군 철수 ▲휴전협정의 평화협정에로의 대체 등을 주장했다.
임양은 이에 앞서 1일 평축 국제준비위원회 관계자들과 회동한데 이어 4일에는 국제대학생회의 및 5일의 정치토론분과회의에 참가, 팀스피리트 훈련을 『공격용 전쟁연습』이라고 설명하고 한국 내에서의 반미투쟁에 대한각국 청년들의 지지를 호소했다.
임양은 또 평축 체육행사에도 참여하여 3일에는 「21세기로의 달리기」에서 약9km의 평양거리를 북한학생 김수경과 한 조가 되어 뛰기도 했다.
평축폐막 하루전인 7일 임양은 북한의 학생위원회와 8개 항의 남북청년학생공동선언문을 채택, 발표했다.
이 성명은 『조국통일이 북과 남의 청년들이 삶과 투쟁의 최우선적 목표』라고 전제, 오는 95년까지 통일위업을 실현하기 위해 공동투정을 전개한다는 등의 내용으로 되어있다.
임양은 9일 북한부총리 정준기 등이 주최한 「통일문화의 밤」과 「한반도평화대행진」 지지서명 행사에 참석, 다음 활동을 위한 준비를 다졌다.
한편 평축이 끝남에 따라 임양은 10일 남포의 서해갑문을 참관하고 김형직 사범대학을 시작으로 북한대학 순방에 나섰다. 임양은 교직원·학생 수천명의 환영 속에 이 대학의 「명예학생」으로 등록했다. 11일 임양은 평양지하철을 참관한 뒤 평양연극영화대학을 방문, 학생들과 『남북학생 단결했다. 미국놈들 각오하라』는 구호를 함께 외치기도 했다.
이날 임양은 『꽃 파는 처녀』공연과 평양시내 모란봉과 을밀대를 둘러본 뒤 오후에는 김책 공대를 방문, 1만여명의 학생들과 함께 『조선은 하나다』 등의 노래를 부르며 통일에의 결의를 다지기도 했다. 12일에는 김일성 대학을 찾아 전대협의 이름으로 「뜨거운 인사」를 전했다.
13일 원산에 도착한 임양은 원산의 경제대학 및 농업대학 방문을 끝으로 2박3일간의 금강산 관광길에 올랐다.
임양은 17일 평양으로 되돌아오는 길에 동명왕릉을 참관했으며 때마침 이곳을 찾은 북한 근로자들과 어울린 뒤 l8일에는 예술영화촬영소를 찾아 북한 영화배우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일련의 성토대회에 이어 20일 백두산이 보이는 삼지연에서 「국제평화대행진」 발대식이 열렸다.
행진대기·북한학생위원회기·전대협기 등을 앞세우고 임양과 북한학생, 평축에 참석한 외국인들이 『조선은 하나다』라는 노래를 합창하면서 개성에 도착한 것은 휴전협정조인기념일을 하루 앞둔 26일이었다. <외신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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