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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경찰에만 자수할 것"···조폭 부두목 수상한 조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경찰이 경기 양주시 한 주차장에 세워진 차량 안에서 50대 부동산업자가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을 수사 중이다. 사진은 공범 중 1명이 지난 20일 오후 사체 유기장소인 주차장에 가기 전 용의 차량(빨간색 원)에서 내린 모습. [뉴시스]

경찰이 경기 양주시 한 주차장에 세워진 차량 안에서 50대 부동산업자가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을 수사 중이다. 사진은 공범 중 1명이 지난 20일 오후 사체 유기장소인 주차장에 가기 전 용의 차량(빨간색 원)에서 내린 모습. [뉴시스]

조폭 부두목을 만나러 간 사업가가 숨진 채 발견된 지 열흘째로 접어들면서 각종 의문점이 증폭되고 있다. 경찰은 피해자를 납치한 뒤 종적을 감춘 국제PJ파 부두목 A씨(60)를 용의자로 보고 추적 중이다. 피해자 B씨(56)는 지난 19일 오전 “A씨를 만나러 간다”며 광주광역시로 향한 뒤 21일 오후 경기 양주시청 인근 차량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50대 사업가 납치·살해 5대 미스터리 #숨진 사업가, 발견 10일째…각종 의혹 증폭 #“거액의 투자 손해”…조폭 부두목이 용의자 #사업가, 19일 광주 갔다가 21일 양주서 발견

①‘고개 숙여 인사’ 깍듯했던 부두목 돌변. 왜?

30일 광주 서부경찰서에 따르면 A씨는 피해자를 만난 초기만 해도 깍듯이 예의를 갖췄다. A씨는 지난 19일 오전 10시 30분쯤 광주를 찾은 피해자를 호텔 앞에서 만난 뒤 머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경찰이 확보한 폐쇄회로TV(CCTV)에는 A씨가 피해자에게 다가가 반갑게 악수를 청하는 모습도 담겨 있다. 이후에도 A씨는 근처 일식집과 노래방 등을 갈 때 접대를 하는 것처럼 B씨를 대했다. 노래방에 들어가서는 러시아인 도우미들을 불러 오후 6시까지 술과 노래를 즐기기도 했다.

CCTV 분석 결과 이런 상황은 이튿날 오전 1시쯤 반전됐다. 노래방에 있던 피해자가 공범 2명의 부축을 받아 차량에 태워진 것이다. 이후 A씨는 친동생이 빌려온 차량에 공범 2명과 함께 탑승해 서울로 향했다. 경찰은 이들이 노래방에서 술을 마시던 중 투자 문제로 언쟁을 벌이면서 사건이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달아난 조폭 부두목이 2006년 11월 광주광역시에서 발생한 건설사주 납치 사건 5개월 만에 검거될 당시 모습. [연합뉴스]

달아난 조폭 부두목이 2006년 11월 광주광역시에서 발생한 건설사주 납치 사건 5개월 만에 검거될 당시 모습. [연합뉴스]

②부두목, 범행 후 자수 의사 밝힌 이유는?

경찰은 A씨가 범행 직후 가족을 통해 자수 의사를 밝힌 점에 주목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지난 23일쯤 가족을 통해 자수 의사를 밝히고도 현재까지 나타나지 않고 있다. 당시 A씨는 “억울하다. B씨를 살해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공범 2명과 친동생에 대한 수사를 통해 정확한 범행 경위를 캐고 있다. 앞서 공범 C씨(65)는 “나이 어린 사람이 반말을 해 우발적 폭행했다”며 단독 범행을 주장했다. 경찰은 A씨의 자수 의사나 공범의 진술이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한 것일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③“광주경찰에 수사받겠다” 시간 끌기?

A씨는 자수의사를 밝히면서 “광주에서 수사를 받도록 해달라”는 전제조건을 달았다. 경찰은 최초 수사 주체였던 광주 서부경찰서가 A씨의 혐의를 살인이 아닌 상해치사로 봤다는 점에서 “광주에 자수하겠다”고 한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살인 혐의로 수사를 진행 중인 양주 경찰서에서 수사를 받는 것이 불리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에 경찰은 A씨의 요구를 사실상 거절했다. 조건부로 자수를 받는 사례가 없는 데다 수사 대상인 A씨에 대한 수사가 지역과 관계없이 객관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A씨는 “투자금을 회수해야 하는 상황에서 B씨를 죽일 이유가 전혀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24일 광주광역시 동구 광주지법에서 부동산 업자 납치·살인 사건에 일부 가담한 혐의(감금 등)를 받고 있는 국제PJ파 부두목의 친동생이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4일 광주광역시 동구 광주지법에서 부동산 업자 납치·살인 사건에 일부 가담한 혐의(감금 등)를 받고 있는 국제PJ파 부두목의 친동생이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④공범들, 유서까지 쓰고 자살시도. 왜?

경찰은 공범들이 범행 후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한 경위도 캐고 있다. 범행 후 죄책감이라고만 하기엔 의심쩍은 부분이 있어서다. C씨 등 공범 2명은 범행 후 시신이 유기된 장소 인근 모텔에서 수면유도제를 먹고 의식이 없는 상태로 발견됐다.

이들은 ‘양주경찰서장님께’라고 적힌 유서를 통해 “죄송하다. 내가 때렸는데 숨졌다”는 내용을 남기기도 했다. 경찰은 이들이 부두목을 도피시키기 위해 시간을 벌 목적으로 전략을 짰는지 등을 조사 중이다.

⑤숨진 피해자, 차 안에 그냥 둔 채 도주?

공범 C씨 등이 숨진 B씨를 도심 속 주차장에 세워진 차 안에 둔 채 달아난 것도 의문점이다. 통상 범행 은폐를 위해 시신을 유기·은닉하는 것과는 달리 아무 조치 없이 현장을 떠났기 때문이다. 경찰은 공범들이 부두목의 협박이나 강요 등에 의해 우발적 범행을 주장할 가능성을 조사 중이다. 아울러 부두목이 공범들에게 금품을 건넸는지도 살펴보고 있다. 경찰은 30일 B씨의 납치·살인 사건에 가담한 혐의로 A씨의 친동생 D씨(58)를 검찰에 송치했다.

광주광역시·양주=최경호·최모란 기자 choi.kyeong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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