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클래식서 벗어난 즐거운 '외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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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 '로미오와 줄리엣' 등 단골 발레레퍼토리는 줄거리와 춤은 익숙할지 몰라도 선도(鮮度)는 떨어진다. 반면 국내 창작 발레는 난해하고 지루하기 십상이다. 과연 새로운 대안은 없는 걸까. 10월 초 무대에 오르는 '칼멘 샌디에고의 행방'과 '고집장이 딸'은 클리식 발레의 편식에서 벗어나 오랜만에 맛보는 유쾌.상쾌.통쾌한 발래다.

칼멘 샌디에고. 세기의 범죄자. 나이? 모른다. 사는 곳? 모른다. 단지 여자라는 사실만 알 뿐. 탐정은 그녀를 잡기 위해 동분서주하지만 매번 허탕만 친다. 결국 탐정은 유력 용의자들을 모두 모아놓고 진짜 칼멘 샌디에고를 가려내는데….

신간 추리소설을 읽는 듯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발레로 만들어진다면? 신세대 안무가 김나영(34)의 창작 발레 '칼멘 샌디에고의 행방'은 소재 자체가 범상치 않다. 신출귀몰한 범죄자와 탐정 사이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은 컴퓨터 게임 '칼멘 샌디에고는 어디에 있나?'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지난해 첫선을 보여 국내 창작 발레 레퍼토리로서 가능성을 엿본 작품이다.

장르를 '댄스 무비'라고 부르는 것처럼 이 작품에는 다양한 극중극이 존재한다. 탐정은 칼멘 샌디에고와 비슷한 모습을 한 여자를 집중적으로 따라다니는데, 그 과정에서 폭력조직과 대치하고 여배우와 사랑에 빠지고 카바레에서 좌충우돌한다. 춤 이외에도 마임.영상.패러디 등 여러 장르가 함께 녹아들었다. 여섯명의 무용수가 칼멘 샌디에고로 분한 것도 재미있다. 4~5일 호암아트홀. 02-766-5210.

클래식 발레 위주의 공연을 해온 국립발레단이 전혀 새로운 작품을 무대에 올린다. 일명 '서민 발레'라고도 불리는 '고집쟁이 딸'이다. 프랑스 혁명기인 1789년 초연된 작품으로, 왕자와 공주.귀족 대신 시골 농가의 평민이 주인공이다. 18세기 유럽의 어느 농가에서 딸을 부자에게 시집 보내려는 어머니와 이에 반항하는 딸의 해프닝을 코믹하게 그렸다. 춤이 좀더 역동적인 쿠바발레단 버전이다.

무대 배경 또한 볼거리다. 당초 이 작품의 안무가(장 도베르발)가 판화를 보고 발레를 구상한 것에 착안, 판화로 찍어낸 듯 세밀한 선으로 그린 그림을 무대막으로 활용한다. 김주원.이원철, 노보연.장운규, 홍정민.이종필 등 세 팀이 고집쟁이 딸과 연인을 맡았다. 10~13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1588-7890.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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