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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에 석유, 중국에는 희토류” 덩샤오핑의 말, 또 통할까

중앙일보

입력

중동에 석유가 있다면 중국에는 희토류가 있다.

지난 21일, 중국 인민일보는 공식 위챗 계정 '협객도(俠客島)'에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희토류 공장을 시찰한 바로 다음 날의 일입니다.

원래 이 말을 처음 했던 사람은 덩샤오핑입니다. 1992년 중국 장시성 시찰 당시 남긴 이야기죠. 세계 희토류 생산량의 약 90%는 중국에서 생산되는데, 장시성은 중국의 대표적인 희토류 광산 지역입니다.

중국 희토류 정제 공장 [출처 중앙포토]

중국 희토류 정제 공장 [출처 중앙포토]

그런데 중국산 희토류의 80%를 소비하는 큰 손은 바로 미국입니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는 이 시점에서 인민일보가 이런 글을 남긴 것은 중국이 희토류를 협상의 히든카드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한때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이라크 등 중동의 전통적인 산유국이 국제 원유가격을 볼모로 잡았듯 말입니다(미국이 셰일가스 덕분에 세계 최대 산유국이 되면서, 중동 국가의 석유 감산 카드는 예전만큼 위력을 발휘할 수 없는 상황이 되긴 했습니다).

미·중 협상, 중국의 히든카드는 희토류

희토류는 화학 원소 번호 57~71번에 속하는 15개 원소와 스칸듐·이트륨 등 17개 원소를 일컫는 말입니다. 이 원소들은 다른 금속보다 안정적이고 열전도율이 뛰어난 데다 전기·자성·발광 특성까지 갖추고 있어 제조업 핵심 분야에 두루 쓰이고 있습니다. 반도체뿐만 아니라 LCD, LED, 태양전지와 전기차 배터리 등 안 쓰이는 곳을 찾기 힘들 정도죠.

사실 '희소하다'는 뜻의 이름과 달리 전 세계적으로 매장량은 적지 않은 편인데요. 광물 형태로 존재하는 양이 적어 채굴하기 어렵고 정제 과정에서 쓰인 염산, 초산을 중화시키기 위해 막대한 화학물질을 투입하는 등 환경오염도 발생하기 때문에 생산에 나서는 나라가 많지 않습니다. 중국이 희토류 최대 생산국가가 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고요.

중국의 항구에서 수출용 희토류를 선적하고 있다 [출처 셔터스톡]

중국의 항구에서 수출용 희토류를 선적하고 있다 [출처 셔터스톡]

중국이 희토류를 협상의 무기로 꺼내든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중국은 2010년 센카쿠(尖閣·중국명 댜오위다오) 열도 영유권 대립 때 일본에 대한 보복 조치로 희토류 수출을 제한했습니다. 이는 반도체, 전자제품 분야에서 승승장구하던 일본의 발목을 잡았고, 결국 일본은 구금시켰던 중국 선원을 석방시키는 등 중국에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2019년의 미국, 2010년의 일본과 다른 점

하지만 중국의 '희토류 카드'가 기대만큼 성공적일지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2010년 일본의 뼈아픈 실책을 미국이 그냥 보고 넘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CNN은 지난 20일(현지시각) "미국은 이미 상당량의 희토류를 확보하고 있어 중국이 희토류 수출을 제한하더라도 실질적인 타격은 받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1일 미국이 중국의 움직임에 어떻게 대비하고 있는지 더 구체적으로 설명했습니다. "미국의 화학 기업 블루라인이 호주 최대의 희토류 생산 업체 라이너스와 손잡고 미 텍사스에 희토류 정련 공장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한 것입니다.

[출처 셔터스톡]

[출처 셔터스톡]

사실 1970년대까지 전 세계 희토류 생산 1위 국가는 미국이었습니다. 비록 중국이 낮은 인건비를 바탕으로 저렴한 희토류를 공급하면서 미국의 희토류 생산 시설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중국의 희토류 수출 거부 카드에 미국이 제시할 '플랜 B'는 분명히 존재하는 셈입니다.

화웨이부터 희토류까지, 다음 변수는 무엇

화웨이의 목줄을 쥔 미국, 희토류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중국. 두 나라의 힘겨루기는 이제 장기전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미국은 지난 10일 2000억 달러 규모의 중국 제품에 대한 관세를 25%로 올린 데 이어 3000억 달러 규모의 제품에 대해서도 관세 인상 조치를 예고하고 나섰습니다. 중국도 다음 달부터 600억 달러 규모의 미국 제품에 대해 맞불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계획인데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미국과 중국이 고율 관세 전면전에 나설 경우 2021년까지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은 0.6%, 중국의 GDP는 0.8% 감소할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출처 셔터스톡]

[출처 셔터스톡]

두 나라가 격돌하며 세계 무역이 뒷걸음질 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습니다. OECD는 올해 세계경제성장률 전망을 3.1%로 하향 조정했는데요. 앙헬 구리아 OECD 사무총장은 미국 경제매체 CNBC와의 인터뷰에서 "미·중 무역 갈등이 경기 침체 가능성을 키우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강대강 대결에서 이번에는 어떤 요소가 변수로 떠오를지, 두 나라의 행보에 다시 한번 시선이 머뭅니다.

차이나랩 김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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