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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남북녀 상하이 '아리랑' 협연…"평양·워싱턴 공연 불가능하지 않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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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형준(왼쪽) 린덴바움 페스티벌 감독과 북한의 김송미 소프라노가 지난 12일 상하이에서 협연하는 모습. [원형준 감독 제공]

원형준(왼쪽) 린덴바움 페스티벌 감독과 북한의 김송미 소프라노가 지난 12일 상하이에서 협연하는 모습. [원형준 감독 제공]

지난 12일 중국 상하이 동양극장에서 아리랑이 울려 퍼졌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북한의 소프라노 김송미씨로, 노란 옷고름에 빨간 저고리의 고운 한복 차림이었다. 김씨와 함께 이날 나란히 무대에 선 음악인은 한국의 바이올리니스트 원형준 ‘린덴바움 페스티벌’ 감독이다. 남남북녀가 중국의 상하이 시티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연주에 맞춰 함께 무대에 오른 것이다. 북한이 단거리 미사일을 4일과 9일 연이어 발사한 직후였다.

남북 협연 성사시킨 바이올리니스트 원형준 인터뷰 #"트럼프 대통령 측근에게도 공연 내용 전달됐다"

원 감독은 20일 본지와 만나 “남북이 이런 식으로 함께 협연한 건 최초일 것”이라며 “공연 나흘 전부터 김송미씨와 함께 리허설을 했는데, 공연 직전까지도 여러 정치적 상황 때문에 우리가 함께 무대에 오를 수 있을지 긴장을 많이 했다”고 전했다.

 원형준(왼쪽) 린덴바움 페스티벌 감독과 북한의 김송미 소프라노가 지난 12일 상하이에서 협연하는 모습. [원형준 감독 제공]

원형준(왼쪽) 린덴바움 페스티벌 감독과 북한의 김송미 소프라노가 지난 12일 상하이에서 협연하는 모습. [원형준 감독 제공]

결과는 성공이었다. 동양극장을 가득 메운 관객은 남북 연주자들에게 박수를 보냈다. 공연을 마친 뒤 원 감독은 관객들로부터 “이런 공연을 보게 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원 감독이 김송미씨를 외교 채널을 통해 처음 소개받은 건 지난해 4월이다. 남북 문화 교류로 한반도 평화에 기여하자고 합심한 이들은 11월 중국에서 ‘남북 오케스트라 구성과 국제도시 순회 연주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이번 상하이 공연은 그 첫 무대다.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ㆍ사드)체계 관련 여파로 한국인 연주자가 중국 무대에서 서는 게 사실상 금지돼 있었지만 중국 당국은 이번엔 특별히 허가를 내줬다고 원 감독은 전했다.

원 감독은 “앞으로 워싱턴과 평양, 서울 및 제주 등에서 함께 공연하는 게 꿈이자 목표”라고 설명했다. 원 감독에 따르면 이 계획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측근에게도 18일(현지시간)께 보고됐다. 미국 국무부의 차관보급 인사는 원 감독에게 “매우 중요한 첫걸음을 뗀 것을 축하한다”며 “트럼프 대통령에게 직보하는 인사에게도 전달했다”고 알려왔다.

북한의 김송미 소프라노가 한복 차림으로 '아리랑'을 열창하고 있다. [원형준 감독 제공]

북한의 김송미 소프라노가 한복 차림으로 '아리랑'을 열창하고 있다. [원형준 감독 제공]

북한에서도 원 감독과 김씨의 협연엔 호의적인 분위기다. 원 감독은 “아직은 조심스럽지만 북ㆍ미 당국 모두 음악을 통한 교류엔 마음이 열려 있다고 본다”며 “남북 및 가능하다면 미국 연주자들이 함께 서울ㆍ평양ㆍ워싱턴에서 공연하는 꿈은 불가능하지 않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올해 34세인 김송미씨는 16세 때 모스크바 국립음악원에 국비 유학을 갔을 정도로 북한에선 음악 신동으로 꼽힌다고 한다.

원형준 린덴바움 페스티벌 감독과 김송미 소프라노가 공연 후 중국 상하이 시티 심포니 오케스트라 카오 펭 지휘자와 악수하는 모습. [원형준 감독 제공]

원형준 린덴바움 페스티벌 감독과 김송미 소프라노가 공연 후 중국 상하이 시티 심포니 오케스트라 카오 펭 지휘자와 악수하는 모습. [원형준 감독 제공]

원 감독은 “이번 공연에서 중국 측의 요청으로 레퍼토리가 마지막에 추가됐는데, 김송미씨가 밤을 새워서 가사를 다 외워 악보 없이 완벽한 무대를 꾸몄다”며 “진정한 프로”라고 말했다. 김송미씨는 ‘아리랑’을 부르기 전엔 한복으로 갈아입고 싶다면서 공연의 순서를 바꾸기도 했다. 원 감독은 “정치적으로 어려운 시기인 만큼 음악으로 남북이 하나 되고 꽉 막힌 북ㆍ미 관계가 뚫리는 계기가 마련되기를 바란다”며 “일견 불가능해 보이는 꿈이라고 해도 조금씩 노력하면 반드시 이뤄지리라 믿는다”고 강조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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