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호 “北 불만, 식량지원 폼 있게 받게 해달라는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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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연합뉴스]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공사는 최근 북한이 선전매체를 통해 남측 정부의 인도적 지원을 ‘생색내기’라고 비난한 데 대해 “식량을 받아도 당당히 폼 있게 받게 해달라는 것”이라고 밝혔다.

태 전 공사는 13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북한 동향 관련 글에서 “최근 우리(남측) 정부에 대한 북한의 비난과 불만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며 “북한을 둘러싼 대외적 환경에 대한 김정은의 좌절감이 점차 커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지난주 북한은 군대, 외교, 대남의 3축을 내세워 북한의 정상적인 화력타격훈련이 남북군사합의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우리 군사당국을 성토하더니 대외선전매체 ‘조선의 오늘’은 우리 정부에 개성공단 재가동을 촉구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대남선전매체 ‘메아리’가 지난 13일 정부가 추진 중인 식량지원을 겨냥해 ‘생색내기를 하지 말라’고 비난한 것에 대해 “식량을 주겠으면 빨리 주면 되는 것이지 시간만 끌면서 소문만 내 ‘북한을 약자로 남한을 강자로’ 보이게 하는 구도를 만들지 말라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또 “개성공업지구 재가동 문제는 김정은이 4·12 시정연설에서 제재 해제 문제에 집착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후 한동안 사라졌던 이슈였는데 다시 등장하고 있다”며 “다시 시동을 걸어 보라는 김정은의 지시가 내려진 것 같다”고 봤다.

태 전 공사는 북한이 지난 4일과 9일 잇따라 단거리 발사체를 발사하는 등 군사행동을 재개한 것에 대해 “중국과 러시아와의 관계도 원활하지 못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는 “북러정상회담에서 한반도 평화를 위해 함께 노력한다고 약속했으므로 한동안 군사적 행보가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했었으나 러시아 방문 후 오히려 군사행보가 늘었다는 것은 김정은이 러시아 방문을 통해 뚜렷한 결과물을 얻어내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어 “김정은이 지난 1월 방중 때 시진핑이 올해 중으로 북한을 방문하겠다고 약속했고, 최근 평양 주민들 사이에서도 상반년 안으로 방문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았으나 이러한 소문이 없어졌다고 한다”며 “시진핑으로서는 미·중 무역 전쟁이라는 심각한 상황 앞에서 방북해 미국을 불필요하게 자극할 필요가 없다고 타산하고 계획된 방문을 하반년경으로 미루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태 전 공사는 “연이은 미사일 발사로 미국을 좀 자극하려고 했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오히려 절제된 반응을 보이고 북한의 ‘생색내기’라는 비난에도 정부가 식량지원을 계속 검토해 나간다니 김정은으로서는 약이 더 오를 것”이라며 “이렇게 상황이 바라던 대로 흘러가지 않으면 북한 내부에서 정책실패의 책임을 묻는 희생양을 찾을 가능성이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울러 “부서마다 강경한 모습을 보여주며 과잉 충성을 할 것이고 이러면 김정은으로서도 내부의 이러한 흐름에 떠밀려 군사적 행보를 이어나갈 수밖에 없다”며 “결국 올해 상반년 안에는 미북 비핵화 협상이나 남북 대화의 실마리를 찾기가 힘들게 돼 있다”고 밝혔다.

김은빈 기자 kim.eunb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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