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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타니·말리···피랍 장씨, 위험경보 6개국 쭉 훑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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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① 구출된 한국인 장씨와 미국인 여성 D씨(오른쪽)가 모로코에서 서사하라까지 이동하는 버스 앞에서 찍은 사진. ② 적생경보지역인 말리에서 군복 차림의 남성과 함께 사진을 찍은 장씨(왼쪽)와 D씨. ③ 아프리카 여성과 포즈를 취한 장씨(왼쪽)와 D씨(오른쪽). [미국 여성 D씨 페이스북 캡처]

① 구출된 한국인 장씨와 미국인 여성 D씨(오른쪽)가 모로코에서 서사하라까지 이동하는 버스 앞에서 찍은 사진. ② 적생경보지역인 말리에서 군복 차림의 남성과 함께 사진을 찍은 장씨(왼쪽)와 D씨. ③ 아프리카 여성과 포즈를 취한 장씨(왼쪽)와 D씨(오른쪽). [미국 여성 D씨 페이스북 캡처]

부르키나파소 여행 중 무장단체에 납치된 뒤 구출된 40대 한국인 장모씨는 약 1년6개월에 걸쳐 세계여행 중이었던 것으로 13일 파악됐다. 장씨는 지난 1월 북아프리카 모로코에 도착한 이후 함께 납치된 중년의 미국 여성 D씨(애리조나주 거주)와 3개월가량 서아프리카 등을 여행했다. 두 사람이 어디에서 언제 처음 만나 탐험 수준의 아프리카 여행을 떠나게 됐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D씨가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 등을 보면 이들은 배낭이나 가방을 짊어진 채 여행을 했다. 먼지가 날리는 흙길을 걸어가는 모습도 자주 보인다.

미국 여성과 납치 전 3개월 동행 #모로코 → 서사하라 → 모리타니 #말리, 장씨 납치 무장세력 근거지 #‘여행금지’ 지역 아니라 처벌 못해

페이스북엔 두 사람이 모로코에서 서사하라·모리타니·세네갈을 거쳐 납치범들이 납치 후 데려가려 했던 말리도 이미 여행한 것으로 나온다. 말리에서 부르키나파소로 건너 온 것은 4월 초였다. 4월 12일(현지시간) 버스를 타고 인접국 베냉으로 향하던 중 납치됐다. 장씨가 그의 언니와 마지막으로 카카오톡으로 연락한 것은 3월 말이었다고 한다.

D씨는 지난 2월 27일 페이스북에 북아프리카 모로코의 남부 도시 아가디르에서 오후 8시 버스를 타고 다음날 오후 4시에 서사하라 다클라에 도착했다며 사진을 올렸다. 버스정류장으로 보이는 곳에서 장씨와 D씨가 함께 찍은 사진도 있었다. 외교부 여행경보상 모로코는 ‘여행 유의’ 지역이다. 서사하라는 황색 경보인 ‘여행 자제’ 지역인데, 일부 지역은 적색 경보인 ‘철수 권고’로 분류돼 있다. ‘여행 금지’ 바로 아래 단계다.

두 사람은 서사하라에서 모리타니로 갈 때 택시로 이동했는데, 중간에 모래 더미에 차량이 빠진 모습도 보인다. 모리타니는 철수 권고 지역이다. D씨는 2월 28일 포스팅에선 “택시에서 12시간 동안 여행했는데 모리타니 국경을 통과하는 게 너무 위험했다”고 적었다. 이들은 현지 가정이나 식당 등에서 주민들과 음식을 함께 먹으며 ‘현지 체험’을 연상케 하는 일정을 보여줬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이후 유럽과 미국으로 가는 아프리카인 노예들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세네갈의 고레섬 등을 거쳐 3월 25일 말리 수도 바마코에 도착했다. 말리도 외교부가 정한 철수 권고 지역이다. D씨가 올린 말리의 수도 바마코의 풍경은 비교적 평화로워 보였다. 이들은 과일을 머리에 이고 나가 시장에 파는 여성이나 잠든 아이를 업은 여성의 모습 등을 사진으로 남겼다. 장씨 등을 납치한 무장세력 ‘카티바 마시나’는 말리에 근거지를 두고 있다.

일주일가량 말리에서 보낸 이들은 지난 4월 2일 국경을 넘어 버스를 타고 부르키나파소로 향했다. D씨는 “문화와 종교를 넘어서 봐야 한다. 나는 버스나 지역 기차를 타고 여행하거나 도로를 걷는 것을 즐긴다. 현지인과 함께 여행하는 게 참 좋다”고 소회를 밝혔다. 장씨도 D씨와 여정을 함께하며 아프리카인의 삶을 경험하는 모습이었다.

4월 12일 D씨는 부르키나파소 동쪽으로 이동하면서 페이스북 댓글에 “베냉으로 가는 길”이라고 적었다. 이후 D씨의 소셜미디어 게시는 중단됐다.

지난 10일 구출된 뒤 파리의 병원에 입원 중인 장씨는 조기 귀국을 희망하고 있다고 한다. 외교부 당국자는 무장세력의 납치 목적에 대해서는 프랑스 당국이 조사하고 있으며, 장씨는 자신이 납치된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고 전했다. 장씨는 피랍 후 약 한 달간 움막 등에서 지냈으며 간단한 음식은 제공됐지만 첫 2주간은 식사를 거의 하지 못했다고 한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날 장씨를 납치한 단체가 한국 정부엔 프랑스군 구출 작전 이전까지 아무런 연락을 취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장씨, 피랍 후 한 달간 움막 생활

장씨가 납치된 부르키나파소 지역은 ‘여행 자제’(황색경보) 지역이었다. 국내 정세와 치안이 불안해 전역이 ‘철수 권고’(적색경보) 지역이었다가 2015년 접경 북부 4개 주를 제외하곤 황색경보로 하향조정됐다. 베냉에 대해선 별도 권고 조치가 없었다. 외교부는 13일 부르키나파소 동부 및 베냉 북부 접경지역에 여행 경보를 ‘철수 권고’(적색경보)로 상향 조정한다고 발표했다.

일각에선 장씨가 정부가 여행 경보를 발령한 지역을 자발적으로 여행하다가 납치됐는데 왜 귀국 비용을 세금으로 지원하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외교부는 “귀국 비용은 항공료 등인데, 지원 여부는 미정”이라고 말했다.

외교부 영사 관련 홈페이지(http://www.0404.go.kr/dev/main.mofa)에 따르면 여행경보 제도는 여행 유의(남색 경보, 신변 안전 유의)→여행 자제(황색경보, 신변안전 특별유의, 여행 필요성 신중 검토)→철수 권고(적색경보, 긴급 용무가 아닌 한 철수, 가급적 여행 취소 및 연기)→여행금지(흑색 경보, 즉시 대피 및 철수)의 4단계다. 흑색 경보 지역 여행을 강행했을 경우엔 여권법 25조에 따라 1년 이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 벌금을 내릴 수 있다. 법무부 관계자는 “장씨의 경우 ‘여행자제 구역’을 여행한 것이어서 처벌은 어렵다”고 말했다.

파리=김성탁 특파원, 서울=전수진·김지아 기자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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