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예술 대중화 뿌리내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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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67년 봄 4명의 젊은 남녀가 나체와 비누거품을 표현언어로 한 일장의 해프닝을 연출한 이래 20년 남짓한 이력을 쌓아온 한국 행위예술이 올 여름 들어 잇단 대규모행사 등을 통해 대중소통의 교두보를 마련해가고 있다.
동숭동에 있는 나우갤러리(대표 강형구)가 지난 7일부터 17일까지 우리 나라의 대표적 행위예술가 18인이 참여한 가운데 『예술과 행위, 그리고 인간, 그리고 삶, 그리고 사고, 그리고 소통』이란 긴 주제의 대규모행위미술제를 성공리에 마친데 이어 18일부터 26일까지는 갤러리 동숭아트센터에서 한일 행위예술가 8인의 설치와 행위를 모듬한 『동방으로부터의 제안』이란 국제행위예술제가 열리게 된다.,
동숭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이번 행위예술제는 87년 아르코스모 미술관에서의 「요코하마·서울 행위예술제」이래 한일 작가들간에 2년여 동안이나 지속적으로 논의돼오던 것이며 금년의 서울 전에서 90년에는 동경전, 91년에는 뉴욕전으로까지 이어지는 3각 국제교류전 프로젝트의 시발행사로서 매우 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번 퍼프먼스 제전은 한국 측의 이건용·김재권·박은수·방효성, 일본측의「이케다」 (지전일)·「이시하라」(석원지명)·「가와시마」 (천도청)·「도노시키」(전부?)등 8인의 작가가 참여하는 인스털레이션전(18∼26일·갤러리동숭아트센터)을 비롯,「메시지와 커뮤니케이션」을 주제로 한 심포지엄(18일 오후2∼5시·동숭아트센터 소극장)과 드로잉전(19∼25일·청남미술관), 퍼포먼스공연 (20일 오후4∼6시·갤러리동숭아트센터)등 대중들로 하여금 행위예술에 대한 입체적 접근이 가능하도록 행사를 다원화하고 있는 게 특징이다.
60년대 후반부터 씨앗을 내리기 시작한 한국의 행위예술은 20여년이란 짧지 않은 역사를 지니게됐음에도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나 엽기성만을 강조하는 자기도취의 길을 걸어왔었다. 그러나 이번의 한일 행위예술교류전은 『철저한 반성과 검증작업을 저변에 깐 적극적인 대중소통의 전략마련』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있어 주목된다.
일본인 커미셔너 「미나미시마」(남도굉)씨의 상대역으로 이번 서울퍼포먼스제전의 개최준비를 전담하다시피 했던 이건용씨는 『인간의 삶 자체를 예술적으로 포괄하는 퍼포먼스가 대중으로부터 소외당해왔다는 사실은 대단한 역설이다. 이는 대중이 공감할 수 있는 문제를 작품화하지 못한 채 말초적 유희로만 치달려왔던 행위예술가 모두의 책임이 아닐 수 없다. 이번 행사는 행위예술의 대중 소외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주제의 대사회적 발언을 강화, 일반의 감수성에 쉽게 침투될 수 있는 소통의 장 창출에 주력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동방으로부터의 제안』전이 내년 동경 「사가초」화랑전을 거쳐 1년 뉴욕전으로 이어지는 3각 국제교류프로젝트로 기획된 데는 지금까지 서구미술의 일방적 수용처로만 기능해왔던 동북아시아권이 이제는 현대예술에 관한 한 서구에 지지 않는 잠재력을 갖추게 됐음을 과시하고 특히 그들이 갖지 못한 동양고유의 정신성으로 서양의 물화된 문명에 충격을 주어 보겠다는 나름의 야심이 깔려있다.
한편 올해와 내년의 한일 교환전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다큐멘테이션을 『동양정신으로부터의 제안』이란 자료집으로 묶은 뒤 이 전시성과가 세계 가운데서 어떻게 반영되고 구현될 것인가를 가늠하는 일종의 국제텍스트로 제시해보겠다는 것이 행사를 마련한 한일 양국관계자들의 계획이다. <정교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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