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 지휘자 「카라얀」사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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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오스트리아 출신의 세계적 명 지휘자로 지난 55년 베를린 필의 지휘를 맡은 이래 35년 동안 이 교향악단을 세계최고의 오키스트라로 굳혀온 지휘의 마술사 「헤르베르트·폰·카라얀」이 16일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
베를린 필 뿐 아니라 세계 정상급 연주자와 지휘자들이 대거 참가하 는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 음악제를 이끌면서 숱한 신화를 남긴 「카라얀」이 잘츠부르크에서 의사의 둘째아들로 태어난 것은 1908년. 3세 때부터 피아노를 시작했으며 모차르트 음악원에서 정식으로 피아노를 배웠다.
이어 빈 음대에서 지휘자수업을 시작, 21세 때는「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을 지휘하여 그 기량을 높이 평가받았다. 그러나 한때는 나치당원으로서 나치 고위
간부들을 위해 정기적으로 공연한 사실 때문에 2차대전 당시의 연합국들은 2년간「카라얀」의 지휘를 금지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고전음악 연주 및 재해석에 새로운 기준을 제공한 천재적 명 지휘자로서 56년에는 빈오페라단의 예술감독으로 임명됐다가 오스트리아정부 측과의 불화로 64년 예술감독을 사임했다. 또 베를린 필과의 오랜 마찰로 지난 4월 종신지휘자의 자리에서 물러나기까지 클라리넷 주자「사비네·마이어」및 천재 바이얼리니스트「안네·소피·무터」의 기용을 둘러싸고 말썽을 빚기도 했다.
평생 직접 지휘·녹음한 8백여 장의 명반을 남긴 「카라얀」은 「토스카니니」의 정확한 해석과「푸르트벵글러」의 풍부한 상상력을 성공적으로 조화시킨 거장. 그러나 현대 클래식 음악연주에 소홀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는 음악적 재능 외에도 제트기 조종·경주용자동차운전·요트경기 등의 모험을 즐기는 한편 과학분야에도 남다른 관심을 보였던 다재 다능한 인물. 지난83년 어느 인터뷰에서『75세가 돼야 음악의 맛을 알기 시작한다. 그러나 음악적으로 성숙하러면 75세가 되어야한다』는 말로 자신의 노익장을 설명한바 있다.
또『나는 아주 어릴 때 내 인생에서 단 1분도 허비해서는 안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제 나는 그것을 이뤘다』고 회고했다.
지난 4월24일 베를린 필의 종신지휘자 자리에서 물러난 이「지휘의 제왕」을 뒤이을 베를린 필의 상임지휘자는 아직도 결정되고 있지 않다. <김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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