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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대북 식량지원 카드 꺼내든 속내…제재완화 없이 교착타개 목표

중앙일보

입력

문재인 대통령은 7일 오후 35분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통화하면서 북한이 지난 4일 쏘아올린 발사체 관련 정보를 공유하고 이후 한반도 비핵화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은 7일 오후 35분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통화하면서 북한이 지난 4일 쏘아올린 발사체 관련 정보를 공유하고 이후 한반도 비핵화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청와대 제공]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일 밤 문재인 대통령과 통화에서 한국의 대북 식량 지원에 대해 “매우 시의적절하며 긍정적인 조치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고 청와대 고민정 대변인이 8일 서면 브리핑을 통해 밝혔다. 북한이 4일 단거리 발사체를 쏜 뒤 첫 한ㆍ미 정상 간의 통화가 대북 압박이 아닌 식량 지원에 초점을 맞췄다. 청와대의 발표대로라면 한ㆍ미 양국이 북ㆍ미간 교착 국면을 뚫을 수 있는 방법으로 대북 식량 지원 카드를 본격 꺼내 든 셈이다.

이는 미국이 주도해온 대북 제재 체제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북한에게 당근을 제시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문제는 북한이 제재 완화가 아닌 식량 지원 수준에서 만족할지 여부다.

한편 백악관은 7일(현지시간) 한·미 정상간의 통화에 대해 "북한과 관련한 최근 상황과 최종적이고 완전하며 검증된 비핵화(FFVD)를 어떻게 성취할지에 대해 논의했다"는 짧은 논평을 냈다. 저드 디어 백악관 부대변인 명의로 나온 이 논평은 단 두 문장으로, 식량지원 등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지난달 11일 문 대통령과 워싱턴에서 만나 정상회담을 하면서도 “인도적인 여러 이슈가 있는데, 그에 대해 문제가 있다고 보지 않는다”며 “한국은 북한에 식량 등을 지원하는데, 이런 현안 등을 문 대통령과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미국 국무부는 미국의소리(VOA) 방송 등을 통해 “북한의 식량난에 대한 보도를 인지하고 있으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는 북한의 식량 구매를 금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냈다. 식량 지원을 위한 일종의 정지작업으로 해석됐다.

선적되길 기다리는 대북지원용 쌀. [중앙포토]

선적되길 기다리는 대북지원용 쌀. [중앙포토]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 특별대표는 이미 지난해 12월 방한에서 대북 인도적 지원에 대한 엄격한 제한을 완화하고, 구호활동을 위한 미국 국적 활동가들의 북한 여행 규제를 해제하겠다는 입장을 언급했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뜻이라고 강조하면서다. 단, 비건 대표는 이런 조치가 대북 제재 완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못박았었다. 미국은 현재도 의회와 국무부 등 행정부 모두 완전한 비핵화 조치 이전엔 제재 완화는 어렵다는 데 의견이 일치한다는 게 복수의 외교소식통의 공통된 전언이다. 이 상황에서 대북 식량 및 인도적 지원이 새로운 협상 카드로 급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대북 식량 지원의 구체적 사항에 대한 논의는 비건 대표의 8~10일 방한 중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7~8일 일본 도쿄를 방문 중인 비건 대표는 가나스기 겐지(金杉憲治)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 겸 북핵 수석대표 등을 만난 뒤 8일 서울에 도착한다. 이후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및 주요 인사들과 오피니언 리더들과 의견을 교환한다. 10일엔 외교부에서 비건 대표와 이도훈 본부장이 한ㆍ미 워킹그룹 회의를 공동주재하는데, 이 자리에서 대북 식량 지원 문제가 본격 논의될 가능성이 크다.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작년 12월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 로비에서 워킹그룹 2차 회의를 마친 뒤 브리핑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작년 12월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 로비에서 워킹그룹 2차 회의를 마친 뒤 브리핑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ㆍ미 워킹그룹은 비건 대표가 주도해 만든 양국 공동 협의체로, 한반도 비핵화 및 대북 제재, 남북 협력 등을 논의한다. 비건 대표가 이 시점에 방한하는 것도 대북 식량 지원의 물꼬를 트기 위한 작업의 일환으로 해석될 수 있다.

한ㆍ미 정상이 7일 통화에서 대북 식량 지원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근거로 제시한 것은 지난 3일(현지시간) 세계식량계획(WFP)과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발표한 북한 식량 실태 보고서다. 이 보고서는 WFP와 FAO 소속 관계자들이 지난달과 지난해 11월 북한을 직접 방문한 결과를 토대로 쓰였다. FAO는 보고서에서 “북한에서 식량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주민들은 1010만명에 달한다”며 “악천후에다 비료 부족 등이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이 보고서는 국내에서도 대북 식량 지원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인용됐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7일 북한이 단거리 발사체를 쏜 뒤 이 보고서를 인용하면서 “인도적 차원의 대북 식량 지원이 현시점에서 적극적으로 고려할 방안 중 하나로 본다”고 말한 것이 대표적이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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