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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일동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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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미.일 정상이 공동성명에 '동맹관계'란 표현을 처음 넣은 것은 1981년 5월이다.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과 스즈키 일본 총리 간 회담 때다. 양국이 안보조약을 체결한 지 30년 만이다. 이 회담은 스즈키 내각을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는다. 당시만 해도 일본 국민의 동맹 알레르기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패전국 신드롬이다.

스즈키는 귀국 후 해명에 진땀을 뺐다. "공동성명은 회담 내용을 적절히 반영하지 않았다. 군사적 의미를 갖지 않는다." 그러나 외무성이 그에게 반기를 들었다. "군사적 관계가 포함되지 않는 동맹은 난센스다."(다카시마 사무차관). 스즈키는 격노했다. 결국 이토 외상이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일.미 안보조약에 군사문제가 포함되는 것은 당연하다"는 퇴임의 변(辯)을 남긴 채. 총리에 대한 항의 사임이었다.

그로부터 2년도 안 된 83년 1월. 레이건-나카소네 총리 회담을 계기로 미.일 동맹은 거듭난다. 나카소네는 거침이 없었다. 소련의 침략에 맞서 일본 열도를 불침항모(不沈航母)로 만들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두 정상 관계는 이름을 부르는 사이로 발전했다. 이른바 '론-야스 시대'. 나카소네는 레이건이 추진한 레이저에 의한 미사일 파괴 계획(전략방위구상) 참가를 결정하고, 방위비의 국민총생산 1% 내 틀을 없앤다. 미.일 동맹 강화는 그가 내건 '전후정치 총결산'의 한 축이었다.

지난주 마지막 정상회담을 한 부시-고이즈미 관계는 론-야스 시대의 재판(再版)이다. 파격적 퍼포먼스와 수사(修辭), 사전에 조율된 밀월 연출. 그러나 묻혀간 것이 있다. 두 정상이 발표한 공동문서다. 제목은 '신세기 미.일 동맹'. 세계 속의 동맹을 추구한다는 내용이다. 10년 전 클린턴 대통령-하시모토 총리 간 안보공동선언을 업그레이드했다. 이 선언상의 미.일 동맹 활동 반경은 아태 지역. 이번에 그 굴레를 없앴다. 글로벌 동맹이다. 그 과정은 삼단뛰기다. 홉(나카소네)→스텝(하시모토)→점프(고이즈미)다.

한.미 양국이 지금 한.미 동맹의 비전을 연구 중이다. 53년 상호방위조약 체결 이래 찔끔찔끔 해 오던 것을 집대성하는 작업이다. 미래상을 그리기는 쉽지 않다. 한.미 동맹은 한반도 방어형 국지 동맹인가. 그렇게는 안 된다. 미국이 절대 반대한다. 지역 동맹인가. 한국이 부담스럽다. 중국 때문이다. 그럼에도 동맹의 비전 마련은 급선무다. 동맹은 비전과 신뢰를 먹고 사는 진화체라기에.

정치부문 오영환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