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은 「쇼」가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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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규연<생활 과학부 기자>】과학은 「쇼」가 아니다. 올 들어 잇달아 발표되고있는 세계적인 첨단 개발에 대해 「바늘 만한 일을 보고 쇠공이만큼 늘려 놓는 것이 아닌가」하는 우려를 씻을 수 없다.
자연과학은 자연 현상의 필연성에 기초하므로 하나의 지식 체계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다른 학문 분야에 비해 좀더 엄정한 객관성이 필요하다.
그러나 최근 들어 국내과학계에서는 객관적 입증이 뒤따르지 않은 연구 결과를 부풀려 발표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고 그 이면에는 과기처와 연구자 및 언론의 한건 주의가 숨어있어 씀쓸한 뒷맛을 남긴다.
얼마전 세계에서 몇번 째로 슈퍼 컴퓨터를 개발했다는 발표가 나왔다. 금방이라도 슈퍼 컴국산화 시대가 올 것 같은 격앙된 목소리였다.
그러나 슈퍼컴의 계산 능력이 통상초당 5억회 이상인 반면 이번에 개발된 컴퓨터는 4백만회에 불과했고 더구나 포항 공대 등 국내 일부 연구기관에서 이미 개발한 상태였다.
이 컴퓨터의 개발 의미는 좀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연구자가 학계에 발표, 객관적 입증을얻기 전에 먼저 언론에 흘린 것은 최근 과학계에서 나타나는 이상한 흐름이라 할 수 있다.
이런 흐름은 얼마전의 퀴놀론계 항생제 개발과 상온 핵융합 발표에서도 보이고 있다.
과기처는 학계에 검증이 있기도 전에 기초단계에 불과한 연구결과를 가지고 페니실린보다 1백배 이상의 능력이 있는 항생제가 완전히 개발된 양 발표했고 대학 수준에 불과하다는 상온 핵 융합 모방 실험을 국내 과학 기술의 대단한 개가인양 뻥 튀기해 발표했다.
이런 모습이 과학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끌기 위한 것이라는 측면에서 일면 이해할 부분도 없지 않지만 객관성이 확보되지 않은 연구 결과를 과장되게 발표하는 것은 국민의 불신감만 더 할 뿐이고 이런 불신이 쌓이면 의미 있는 업적이 발표돼도 「그저 그런거겠지」라는 반응이 나올 것임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물론 신물질 개발과 초합금 개발 등에선 그 나름대로 업적을 평가 할수도 있으나 과학기술의 참다운 발전을 위해서는 뻥튀기 발표는 없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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