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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프리즘] 먹거리 테러리스트와 적폐 청산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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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2호 29면

김창우 기획취재 에디터

김창우 기획취재 에디터

지난 2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식료품 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올해 들어 채솟값이 30% 이상 급등하자 식료품 중간 도매상들이 사재기에 나서고, 여기에 외국 투기 세력까지 가세한 결과라고 본 것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를 “푸드 테러리즘”이라고 규탄했다. 3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터키 정부는 발 빠르게 움직였다. 수도 앙카라와 경제 중심지 이스탄불에 ‘반값 채소’를 내세운 150여 개의 직영 가판대를 열었다. 농민들에게서 채소를 사들여 싼값에 풀었다. 식료품 매장은 정부와의 가격 경쟁을 견디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미국 월간지 디어틀랜틱은 지난달 25일 이스탄불의 정부 직영 가판대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했다. “매일 새벽 수백명의 시민이 줄을 선다. 몇 시간 뒤 정부 트럭이 도착해 토마토·양파 등을 내려놓으면 구매 한도인 3㎏을 산다. 매대가 비면 다시 수백명이 다음 트럭을 기다린다.”

물가 오른다고 ‘반값 채소’ 공급 #터키, 엉뚱한 ‘투기와의 전쟁’ #경제를 선악으로 나누면 곤란

이런 인기 정책에도 터키 집권당은 지방선거에서 앙카라와 이스탄불 시장을 야당에 내줬다. 경제 문제도 여전하다. 15년째 집권 중이던 에르도안 대통령은 지난해 대통령중심제 개헌을 통해 30년 집권의 길을 열었다. 하지만 2년째 구금 중인 미국인 목사 석방문제로 지난해 8월 미국이 관세 인상 등 제재에 나서면서 경기침체가 시작됐다. 리라화 가치는 1년 새 40% 떨어졌고 지난해 하반기에는 10년 만에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올해 들어서도 물가는 20% 가까이 올랐고, 올 1월 실업률은 14.7%에 달했다. 17일(현지시간)에는 터키 중앙은행의 순외환보유액이 281억 달러이고, 통화 스와프를 통한 단기 차입금을 제외하면 160억 달러에 불과하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리라화 가치는 6개월 내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일각에서는 통화위기 재발 우려도 나온다.

19세기 말 서양 학문을 받아들인 일본 학자들은 ‘이코노미(economy)’를 ‘경제’로 번역했다. ‘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구제한다’는 뜻의 ‘경세제민’에서 따왔다고 한다. 원래 이코노미는 ‘가정 관리’를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나왔다. 가부장적 대가족 단위로 운영되던 당시의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17세기 근대국가가 성립되면서 이런 소규모 자급자족 경제와 구분하기 위해 국가 단위의 경제를 ‘정치 경제(political economy)’로 불렀다. 그런데 일부 국가의 집권층은 이를 국민의 선택을 통해 권력을 쥔 정부가 사익만 추구하는 기업을 제어해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이코노미가 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구제하는 것과 무슨 관계인지도 잘 모르겠지만, 정부가 경제적인 선택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이유도 알 수 없다.

부동산 가격 상승은 일부 투기꾼의 농간 탓이고, 소득을 늘리면 소비가 활성화되어 경제가 성장한다고 우리 정부는 주장한다. 투기를 막기 위해 세금을 올리고 대출을 조이면 당장 수요가 줄어 값이 내려갈 수 있지만, 공급도 줄어 중장기적으로 상승할 수도 있다. 최저임금을 올리면 소득이 늘어 경기가 활성화할 수 있지만, 일자리를 잃는 사람들이 늘어나 국가 전체 소득은 오히려 줄 수도 있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선택의 문제라고 가르친다. 한편으로는(in one hand) 기대대로 될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on the other hand) 반대의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이 괜히 “외팔이(one handed) 경제학자는 없느냐”고 역정을 낸 것이 아니다. 하지만 부동산세를 올리고 최저임금을 올리는 것을 ‘정의롭다’고 평가하고, 반대하는 것을 ‘적폐’라고 부른다면 이코노미를 ‘다스리고 구제하는’ 시각에서만 보는 것이다. 경기 침체를 ‘먹거리 테러리스트와의 전쟁’으로 풀려 드는 터키의 모습과 다를 게 무엇인가.

김창우 기획취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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