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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입시미술이 경쟁력…BMW 3시리즈 인테리어 제 작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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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김누리 BMW 디자이너가 지난 15일 서울 강남구 BMW 전시장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김누리 BMW 디자이너가 지난 15일 서울 강남구 BMW 전시장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왜 한국인 디자이너들이 두각을 나타내느냐고요? 입시미술 덕분이죠.”

아시아인 첫 본사 디자이너 김누리 #정비사 자격 딸 정도로 차에 열정 #4년간 토너먼트 거쳐 책임자 발탁 #“입시미술이 창의력 죽인다지만 #세상에 배워서 쓸데없는 건 없어”

한국인·아시아인 최초로 독일 BMW 본사 디자이너로 활동 중인 김누리(35)씨에게 한국인 자동차 디자이너의 경쟁력을 물었을 때 돌아온 대답은 의외였다. 무슨 의미인지 묻자 그는 “그림 실력만큼은 한국인을 따라올 사람들이 없다”고 했다. 아무리 뛰어난 아이디어가 있어도 표현해내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는 얘기였다.

김씨는 BMW 대표 차종인 3시리즈의 인테리어 디자인을 총괄했다. 지난 15일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 코오롱모터스 BMW 전시장에서 그를 만났다. 지난주 3시리즈의 한국 출시에 맞춰 3년 만에 고국에 돌아온 그는 “3시리즈 디자인을 맡은 건 생애 최대의 부담이자 영광이었다”고 했다.

입시미술이 경쟁력이란 얘기가 재미있습니다. 어떤 의미인가요.
“외국 디자이너들도 뛰어나지만, 한국 디자이너의 그림 실력을 보면 깜짝 놀라요. 입시미술이 창의력을 죽인다고 하지만 세상에 배워서 쓸데없는 건 없는 것 같아요. 여기에 창의력을 더하면 최고가 되는 거죠. 그림 실력은 분명 한국인 디자이너들의 경쟁력입니다.”
예술가는 세상에 하나뿐인 작품을 만들지만, 산업디자이너는 대량생산되는 제품을 만듭니다. 어떤 점이 매력적인가요.
“순수미술로 시작했지만 사람들이 내가 디자인한 제품을 사용하고 피드백을 주는 게 좋아서 진로를 바꿨어요. 작년에 3시리즈가 독일에서 출시돼서 길거리에서 만날 수 있는데 뿌듯하더라고요. 세워져 있는 차 안을 들여다보기도 했고요.”
김씨가 디자인한 BMW 3시리즈의 인테리어 디자인. [사진 BMW코리아]

김씨가 디자인한 BMW 3시리즈의 인테리어 디자인. [사진 BMW코리아]

예중·예고를 나온 김씨는 국민대 공업디자인과에 진학하면서 인생 항로를 바꿨다. 처음엔 미국 우주항공국(NASA)에서 우주선을 디자인하는 걸 꿈꿨지만, 강렬한 자동차 디자인에 관심이 생기면서 진로를 한 번 더 바꿨다. 독일 유학을 준비하면서 자동차에 대해 더 알고 싶어 정비기능사 자격증도 땄다. 이 경험은 그에게 큰 밑거름이 됐다고 했다.

디자이너와 실제 양산을 하는 엔지니어는 긴장 관계일 것 같은데요.
“엔지니어는 디자이너의 적이 아니라 한 배를 탄 동료죠. 정비기능사 준비를 한 게 큰 도움이 됐어요. 자동차의 구조를 알고 얘기하면 엔지니어들이 더 존중하거든요. 자동차 디자이너가 안 되면 정비사로 먹고 살지 하는 생각도 했어요. 하하.”
3시리즈 디자인 콘테스트가 매우 치열했다고 들었습니다.
“4년 동안 토너먼트 형태로 진행됐어요. 처음 스케치를 내고 여기서 뽑힌 디자이너들이 다시 컴퓨터 디자인을 하고, 살아남은 최종 2명이 클레이(찰흙)로 실물 모형을 만들죠. 피를 말리는 시간이었어요. 일희일비하는 순간이 많았지만 자신 있었어요. 승리의 비결이라면, 내가 하고 싶은 디자인이 아니라 회사의 철학을 담은 디자인을 한 거라고 생각해요.”
외국에 도전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닐 텐데요.
“큰 결심이 필요하죠. 말도 안 통하고 살아본 적 없는 곳으로 가야 하니까요. 한국에도 좋은 회사가 많지만 자리는 한정돼 있어요. 모든 사람에게 기회가 돌아가지 않습니다. 자신감을 갖고 도전하면 충분히 기회는 열려 있습니다. 후배들에게 기회가 있으면 가고,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나가라고 조언합니다.”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지금까지 제 고객은 소비자와 내부의 결정권자였어요. 저도 언젠간 ‘결정하는 힘’을 갖고 싶죠. 제 비전과 디자인이 고객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동현 기자 offram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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