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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 500명 노트르담 종탑에 물 장벽, 건물 붕괴 막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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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16일 프랑스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 앞에서 소방대원들이 화재 진압을 마친 뒤 크리스토프 카스타네르 내무장관과 로랑 뉘네 차관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다. [EPA=연합뉴스]

16일 프랑스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 앞에서 소방대원들이 화재 진압을 마친 뒤 크리스토프 카스타네르 내무장관과 로랑 뉘네 차관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다. [EPA=연합뉴스]

15일(현지시간) 발생한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 현장에서 목숨을 걸고 최악의 사태를 막은 ‘영웅들’의 사연이 공개됐다. 불이 서쪽 정면 출입구에 있는 종탑까지 번지지 않도록 사력을 다해 ‘물의 장벽’을 만든 소방대원들과 ‘인간 사슬’이 돼 성당 안 유물을 구해낸 사제·소방관·시민들이다.

목재 지붕과 종탑 사이 불길 잡아 #건물 무너뜨릴 13t 종 추락 차단 #신부·시민들은 ‘인간띠’ 만들어 #가시면류관 등 성당 안 유물 꺼내 #복구 성금 이틀 만에 1조원 넘어

로랑 누네즈 프랑스 내무부 차관은 16일 오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소방관들이 건물을 구했는데, 15~30분만 더 늦었으면 건물이 모두 붕괴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가디언이 전했다. 소방관들의 사투 덕분에 15~30분을 남기고 성당 건물 전체가 붕괴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화재 진압 후의 노트르담 대성당 내부 모습. [AFP=연합뉴스]

화재 진압 후의 노트르담 대성당 내부 모습. [AFP=연합뉴스]

누네즈 차관에 따르면 화재는 보수공사를 위해 비계가 설치된 장소에서 발화해 첨탑을 태우고 지붕으로 번졌다. 지붕까지 무너져내리게 한 불길은 서쪽 정면 출입구 윗부분에 있는 두 개의 종탑으로까지 옮겨가는 중이었다. 이 종탑 내부의 목재 부분으로까지 불이 번지면 13t이 넘는 종이 떨어져 깨지고 이 충격이 탑 자체를 무너뜨렸을 수 있다는 것이다. 투입된 소방관 500여 명은 외부와 내부에서 목재 지붕과 종탑 사이에 ‘물의 장벽’을 치려고 사력을 다했다고 가디언은 설명했다.

워싱턴포스트(WP)와 텔레그래프 등은 소방대원들과 가톨릭 신부, 시민들이 ‘인간 사슬’을 만들어 예수가 쓴 것으로 알려진 가시 면류관 등 성당 안 유물들을 구해냈다고 보도했다. 인간 사슬 맨 앞에는 파리 소방서에서 사제로 근무하는 장-마크 푸르니에 신부가 있었다. 푸르니에 신부는 소방대원들과 함께 불타는 대성당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허가해 달라고 필리프 구종 파리 15구역 구청장에게 강력하게 요청했다. 이후 안으로 들어가 손에서 손으로 유물을 밖으로 내보냈다. 이 유물들은 곧 루브르 박물관으로 이송된다.

16일 파리 시청사인 오텔 드빌의 문화재 수장고에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에서 살아남은 유물들이 안전하게 보관돼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16일 파리 시청사인 오텔 드빌의 문화재 수장고에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에서 살아남은 유물들이 안전하게 보관돼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화재로 소실된 첨탑 끝에 장식돼 있던 수탉 청동 조각상도 극적으로 회수됐다. 르 피가로에 따르면 화재 진압 후 폐허 더미를 뒤지던 프랑스 건축연맹 자크 샤뉘 회장이 이를 찾아냈다. 수탉은 프랑스의 상징 동물이다.  노트르담 성당의 오르간도 큰 손상을 입지 않았다. 화재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같은 날 시민들이 노트르담 대성당 인근에 모여 기도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같은 날 시민들이 노트르담 대성당 인근에 모여 기도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 마크롱 “5년 내 복구” 일부선 “40년”=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TV 연설에서 “노트르담 대성당을 더 아름답게 재건할 것”이라며 “5년 안에 작업이 마무리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영국 켄트대 중세유럽사 전공인 에밀리 게리 부교수는 미 CBS방송에서 참나무 확보 등을 이유로 “복구에 40년 정도가 걸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트르담 대성당 복원을 위한 지원 움직임도 확산되고 있다. 국적과 국경 불문이다. 17일 영국 데일리메일 등에 따르면 화재 발생 이틀 만에 약 10억 유로(약 1조3000억원)가 성당 복원 기금으로 모금된 것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3억 유로가 프랑스를 대표하는 패션 그룹 두 곳에서 나왔다.

노트르담 대성당 첨탑 청동 수탉 조각상을 회수한 자크 샤뉘 회장. [사진 자크 샤뉘 트위터]

노트르담 대성당 첨탑 청동 수탉 조각상을 회수한 자크 샤뉘 회장. [사진 자크 샤뉘 트위터]

화재 당일 밤 프랑수아 앙리 피노 케링그룹 회장은 1억 유로(약 1280억원)를 내놓겠다고 성명을 냈다. 케링 그룹은 산하에 구찌와 이브생로랑 등을 거느리고 있다. 다음 날엔 경쟁사 루이뷔통모에헤네시(LVMH)가 동참했다. 루이뷔통, 크리스챤 디올, 지방시, 펜디, 겐조, 불가리 등의 브랜드를 거느린 LVMH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은 케링 측의 두 배인 2억 유로를 쾌척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에서도 기부행렬에 동참했다. 애플의 팀 쿡 최고경영자(CEO)는 구체적 액수는 밝히지 않은 채 복원 작업에 힘을 보태겠다고 밝혔다.

미국 뉴욕에 본부를 둔 프랑스 헤리티지 소사이어티는 대성당 복원을 위한 기부 사이트(GoFundMe)를 개설했다.

파리=김성탁 특파원, 서울=강혜란·이영희 기자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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