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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양심 판독 시스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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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승현 기자 중앙일보 사회 디렉터
김승현 정치팀 차장

김승현 정치팀 차장

“오심(誤審)도 경기의 일부”라는 스포츠계 잠언은 더는 유효하지 않다. 주요 프로스포츠가 ‘비디오 판독 시스템(VAR·Video Assistant Referees)’으로 오심을 축출하고 있다. “축구는 인간의 얼굴을 해야 한다”(제프 블래터 전 FIFA 회장)며 보수적이던 축구계는 2018년엔 러시아월드컵에서도 VAR를 활용했다. 적용 범위 논란이 있지만, 시행착오일 뿐이다. 인간의 실수를 바로잡는 일은 더 빈번해질 게 분명하다.

봄의 전령사로 확고하게 자리 잡은 한국 프로야구도 코칭스태프가 양손으로 사각형을 그리며 더그아웃에서 나오는 모습이 익숙해졌다. 첨단기술이 상하좌우 포착한 영상은 먼지 속에 뒤엉킨 선수들의 동작을 ‘해부’한다. 슬라이딩한 손이 홈 플레이트에 먼저 닿았는지, 포수의 글러브가 엉덩이를 먼저 터치했는지 판가름하는 찰나를 잡아낸다. 심판을 속이는 거짓 동작, 진실을 덮는 가짜 표정이 탄로 난다. 2017년 미 여자프로골프 톱스타 렉시 톰슨은 볼 마크 지점보다 공을 홀 쪽에 더 가깝게 놓은 규칙 위반이 시청자 제보로 들통났다. 불과 몇 년 전까지 TV 중계 슬로비디오로 오심과 기만을 목격하고도 속수무책이던 팬들은 이제는 방관자가 아니다. 촘촘해진 ‘정의(正義) 구현’ 시스템 앞에 허술했던 과거는 아련한 추억이다.

최근 국회에서도 비슷한 진화를 느낀다.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인사청문회에서 불성실 자료 제출을 매섭게 질타하던 10년 전 자신의 동영상과 마주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법무부 장관으로서 김학의 동영상에 대해 보인 6년 전 언행을 해명해야 한다. 최악의 산불에도 국가안보 컨트롤 타워를 국회에 묶어 둔 일 역시 잘잘못이 고스란히 저장돼 있다. 당장은 잊힐지 몰라도 앞 뒷말 다른 공인의 양심은 언젠가는 판독될 게 분명하다.

김승현 정치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