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축」참가 전담한 막후실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전대협산하 평양축전준비위원회를 반국가 이적단체로 규정, 검·경이 전대협 핵심지도부의 검거에 적극적으로 나섬에 따라 임수경양(21)의 입북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전대협 축전준비위원회 정책기획실」등 철저히 베일에 가려졌던 전대협 핵심조직의 정체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약 20여명으로 구성된 이 기획실은 전대협의 사활이 걸린 평축 참가의 제반실무기획을 전담하고 이의 구체적 실행방법을 논의키 위해 85학번 이전 학생들이 주가 되어 구성한「내부조직」으로 전대협을 막후 조종한 실세로 알려졌다.
전대협이 산하 6개 지역 21개 지구별로 축전준비를 구성하고 임의기구형태를 빌려 실제적 총괄기구인『축전정책기획실」을 설치한 것은 지난 4월 초순경으로 전대협의장단을 비롯, 각 지역대표와「실세」로 표현되는 핵심 멤버가 근간을 이루고 있다.
「전대협평양축전준비위」용인·성남지구 정책기획실장인 임양의 이번 입북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전대협 정책기획실장」은 각 지역을 대표하는 지역별 추진 정책기획실장들과 꾸준히「연구토론사업」을 가져왔으며 이 과정에서 임양이「여건」과 자질면에서 최적임자로 선택됐을 것으로 보인다.
전문환 축전준비위원장도 지난달 30일 기자회견을 통해「국내정세를 면밀히 검토」한 끝에 5월말 정책기획실장에게 축전참가의 적임자를 물색해 줄 것을 처음으로 요청했다고 밝힌바 있다. 이는 전대협 공개조직을 통한 축전참가 권유자체가 실효를 못 거둘 경우 전대협에 치명적인 타격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 오래전부터 인간적 신뢰감을 토대로 다져온 비밀조직정책실을 통해 입북을 추진하게 된 것이라고 수사당국은 분석하고 있다.
전대협 6개 지역 축전정책기획실 간부 등은 그들의 회합 일시와 장소뿐만 아니라 결정사항까지 철저히 비밀에 부쳤을 뿐만 아니라 전대협의 주요한 입장발표가 있을 때마다「얼굴 없는 배석자」로 기자회견 장에 참석, 실제적인「지시」를 내려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점들로 미뤄볼 때 전대협은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소위「언더」(비공개핵심조직)에 의해 주도되어 온 것으로 경찰은 보고있다.
『전대협이 의장단과 중앙집행위원회 산하에 투쟁국·선전국·연대사업국 등으로 빈틈없이 짜여진 조직체계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 모든 주요결정사항은 이미 결정된 상태에서 요식적인 토론 행위만이 있어왔다』는 그간의 학생운동권내부의 불만이 이를 뒷받침해 주고있다.
실제로 지난 4월 제3기 전대협 출범식 때 채택된 조직개편·규약·강령 등도 사전에 모든 내부협의와 조정이 끝난 상태에서 거의 원안 그대로 확정됐었다.
또 86년10월 건대 사태이래 운동권에서 서울대 세력이 급격히 퇴조하고 연대와 고대에서 주사파가 총학생회를 장악하는데 실패하자 운동권의 대세를 거머쥐기 위해 내세웠던 임종석 전대협의장체제 역시 비밀조직에 의한 핵심세력들이 사전에 당선자까지 내정한 가운데 이뤄진 것으로 경찰은 보고있다.
어느 시점에선 필연적으로 공권력과의 충돌이 불을 보듯 뻔한 전대협입장에서는 대중적 지지기반을 확보하고 조직이 완전 노출될 경우 우려되는 개인과 조직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비밀주의와 폐쇄성이 요구됐던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일부 핵심조직에 의한 전대협의 비공개적 운영은 그 동안 학생운동권 내부에서도 비민주적이라는 지적을 받아왔으며 이 같은 파행적 운영 때문에 전대협의 주도권을 둘러싼 조직 내분가능성이 예상돼온 것 또한 사실이다.
이 때문에 경찰의 추적을 받게된 전대협은 앞으로 더욱 지하조직화 하거나 비판세력에 의해 와해될 가능성이 크고 정책기획실 핵심 멤버들은 대학운동권내에 비밀결사조직을 새로 형성할 움직임을 보일 것으로 수사당국은 전망하고 있다. <진세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