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날마다 이벤트… 남은 삶 '눈이 부시게' 살고 싶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81)

2월엔 신문사에서 전자책을 만들어 주셨다. 꼭 요란한 사건만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운명을 바꾸는 드라마틱한 순간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사소할 수 있다고 어느 영화를 만든 작가의 말이 생각난다. 60년 보통 인생으로 살아온 내 인생의 새 문을 열어준 신문사에 다시 한번 고개 숙여 감사함을 전한다.

축하한다며 안동의 문학모임과 얼굴도 모르는 분들이 꽃을 들고 내가 일하는 고택으로 찾아와 주셨다. 신문구독자라며 나이 드신 어르신들도 버스를 타고 방문해 주시고, 전 안동 국회의원 부인께서도 덕담과 함께 책을 보내주셨다.

전자책 발간 소식을 전한 뒤 딸네 집에 들어서니 사위가 커다란 꽃다발을 안겨주었다. "웬 꽃다발?" 하니 쑥쓰러워 하는 사위 왈, "셋째 봐주시느라 감사해서 드리는 거"란다. [사진 송미옥]

전자책 발간 소식을 전한 뒤 딸네 집에 들어서니 사위가 커다란 꽃다발을 안겨주었다. "웬 꽃다발?" 하니 쑥쓰러워 하는 사위 왈, "셋째 봐주시느라 감사해서 드리는 거"란다. [사진 송미옥]

누구 할머니가 아닌 내 이름을 누군가가 불러준다는 것은 행복 넘치는 기쁨이다. 나이 들어 전자책은 눈이 아파 못 사 봐도 축하는 해야 한다며 너스레를 떤다. 누가 보면 하버드대 박사 논문 통과하고 대통령상이라도 받은 줄 알겠다. 올해도 일 년 내내 아모르 파티가 예상된다.

도서관에서 만난 지인들이 또 전자책 이야깃거리를 흔들며 밥 먹자고 나오란다. 소소한 이벤트 거리는 유효기간이 없다. 케이크에 꽃다발, 폭죽까지 터지는 요란한 상을 받는다. 살아 있는 날의 일상이 소소한 이벤트다. 기운이 난다. 글 잘 쓰는 전문가 틈에 끼어 주눅이 들어 있었는데 마구 힘이 생긴다.

언젠가 교육청에 근무하시는 주무관님이 대형액자를 선물로 보내주셨다. “제가 사진대회에서 큰 상 받은 일출 사진인데 송 선생님께 드리고 싶어서요. 좋은 일 생기면 이 사진에서 기를 받은 걸로 아세요~” 이번에 만나서 아마도 내가 잘 나가는 것이 그 사진 덕분인 것 같다며 인사를 하니 환하게 웃으며 당신이 더 기분 좋아하신다.

박학다식한 또 다른 남자회원님이 덕담을 해주는데 황송해서 눈물이 날 뻔했다.

“옛글에 보면 썩지 않는 세 가지가 있다고 했지요. ‘삼불후(三不朽)’는 德(덕), 功(공), 文(문)인데, 그중 하나가 글이랍니다. 사람이 평생을 살면서 이 중 한 가지만 이루어도 크게 성공한 거랍니다. 누님은 그중 한 개를 이루었으니 우리가 어찌 잔치하지 않으리오? 그것도 우리나라의 삼대 신문 중 최고의 신문이 만들어 준 거니 성공한 거지요.

제목까지 ‘살다보면’이라~ 치매만 걸리지 않고 손가락 힘만 있으시면 다른 유명인사, 전문가보다 더 오래~ 잘리지 않고 쓰실 겁니다. 전문 지식은 한계가 있지만 삶의 이야긴 죽어야 끝이 나거든요. 하하. 그래서 보통사람이 가장 행복한 인생이라고 하잖아요. 힘내세요!”

왼쪽은 안동문학회에서 준 꽃다발. 오른쪽은 40대 회원이 직접 만들어서 준 감동 편지와 연필가방이다. 어떤 메이커보다 소중하고 값지다. [사진 송미옥]

왼쪽은 안동문학회에서 준 꽃다발. 오른쪽은 40대 회원이 직접 만들어서 준 감동 편지와 연필가방이다. 어떤 메이커보다 소중하고 값지다. [사진 송미옥]

며칠 후 그날 모임에서 화사한 꽃다발을 내게 안겨준 젊은 회원이 전화가 온다. 약속장소에 도착하니 화사한 원피스 차림의 모습이 봄 처녀 같다. 무언가를 창문으로 넣어주고는 차 문을 탕탕 치며 쑥스러운 눈빛으로 빨리 가란다. 저번 모임 때 드리려고 만든 건데 계획보다 늦어져서 이제 드리는 거라며 수줍어한다.

길가에 차를 세우고 선물을 풀어본다. 천으로 만든 작은 손지갑에 온갖 색색의 펜이 손편지와 함께 들어있다. 한 땀 한 땀 손으로 바느질한 핸드메이드이다. 아…. 어쩌면 좋아. 가슴이 벌렁거리고 벅차서 눈물이 뚝뚝 저절로 흐른다.

우물 안 개구리같이 고만고만한 사건 속에서 복작거리며 사는 우리네 인생살이지만 이런 작은 기쁨에도 뻥튀기하듯 축하와 격려로 웃음꽃을 만드는데 요즘 살벌하고 이해 안 가는 뉴스에 비하면 우리가 비정상으로 사는 것 같기도 하다.

‘불혹을 넘고 육십을 넘어 사춘기적 문학에 대한 사랑을 아직 간직하고 있다면 등단작가가 아닌들 어떠랴. 내 이름의 책 한권이 없으면 어떠랴. 좋은 글을 못 쓴들 또 어떠랴. 문학이 흐르는 삶이면 충분하고 남은 나의 인생이 한편의 문학이 되면 족하리.’ 어느 책에 적힌 한 구절이 더욱더 감동으로 다가온다.

평범한 일상이 남들 눈에는 별거 아니고 후져 보인다고 해도 어느 드라마의 가슴 적시는 대화처럼 아침을 열고 노을이 질 때까지 남은 삶을 눈이 부시게 살다 가고 싶다. 오늘도 햇살이 눈 부신 하루의 사작이다. 눈을 뜨면서부터 이벤트가 시작된다.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