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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새사람 됐어요, 그건 니 생각…유행가에 빠진 하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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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80)

오늘은 쉬는 날, 추적추적 봄비가 내린다. 미세먼지로 스산하다가 비까지 내린날 맨발로 집안을 여행했다. [사진 pixabay]

오늘은 쉬는 날, 추적추적 봄비가 내린다. 미세먼지로 스산하다가 비까지 내린날 맨발로 집안을 여행했다. [사진 pixabay]

오늘은 쉬는 날, 추적추적 봄비가 내린다. 눈을 뜨면 온갖 사고와 삶과 죽음, 환경 문제 등등 미세먼지 같은 불편한 뉴스와 함께 한편에선 봄꽃이 피었다 난리이고 축제 소식에 들뜬다.

미세먼지로 스산하다가 비까지 내리니 오늘 하루는 맨발로 집안을 여행한다. 좋은 이야기할 사람도 만나기 싫은 날. 그런 날엔 누군가는 조용히 글을 쓰고, 누구는 그림을 그릴 것이며 또 어떤 이는 혼자서 여행을 떠날 것이다. 나는 음악만 나오는 라디오를 크게 틀어놓고 방과 방을 여행하며 미처 보지 못한 새로운 것을 찾아 무언의 대화도 하며 또 이리저리 가구의 방향도 바꿔 시각적 새로움도 만들어 본다.

오페라, 뮤지컬, 가곡 등 품위와 격을 높여주는 음악도 많지만 일반사람들이 가장 즐겨 부르고 따라 부르며 울고 웃는 음악은 유행가다.


당신의 오늘 하루가 힘들진 않았나요?
나의 오늘 하루는 그저 그랬어요.
괜찮은 척하기가 혹시 힘들었나요?
난 그저 그냥 버틸 만했어요.
솔직히 내 생각보다 세상은 독해요.
솔직히 난 생각보다 강하진 못해요.
하지만 힘들다고 어리광부릴 순 없어요.
버틸 거야, 견딜 거야, 괜찮을 거야.
하지만 버틴다고 계속 버텨지진 않네요.
그래요. 나 기댈 곳이 필요해요.
그대여 나의 기댈 곳이 돼줘요.

마음이 짠해진다. 가사를 들으며 개다만 옷을 안고는 모노드라마도 해본다.


다시 태어난 것 같아요. 그대 만난 이후로 난 새사람이 됐어요.
우리 어머니가 제일 놀라요.
아침 일찍 일어나 그대가 전해준 제목도 외기 힘든 그 노래를 들어요.
뭔 내용인지 몰라도 그 음악이 너무 좋아요.
관심도 없는 꽃 가게를 들러 주머니 털어 꽃도 한 다발 샀어요.
모진 이 세상도 매일 이렇다면 참 살아갈 만할 거예요.
그대만 있으면 이 세상은 천국~ 그대의 모습만 봐도 천국~

너와 내가 처음 만나 시작은 모두 이렇게 살았는데 말이다. 그런 그대들이 왜 서로에게 원수가 되었을까나? 웃음이 절로 나온다. 저번엔 호주까지 가서도 아들과의 의견 충돌에 애증의 불꽃이 튀어 투덕거리고 난 후 슬그머니 들려준 ‘그건 니 생각이고’가 흐른다. 크게 웃었다.


원래부터 내 길이 있는 게 아니라 가다 보면 어찌어찌 내 길이 되는 거야.
내가 너로 살아봤냐? 니가 나로 살아봤냐?
그냥 니 갈 길 가.
이 사람 저 사람 이러쿵저러쿵 뭐라 해도 상관 말고 그냥 니 갈 길 가.
미주알고주알 친절히 설명을 조곤조곤해도 못 알아들으면 그냥 이렇게 말해버려.
알았어, 알았어, 뭔 말인지 알겠지만 그건 니 생각이고.
그건 니 생각이고. 니 생각이고.


인생아, 고마웠다. 사랑이 나를 떠나고 세상이 나를 속여도
그것이 내 몫이라고 말해주어서. 훗날 눈물 많은 삶이어서 고생했구나 말해주렴.
배운 게 많은 삶이어서 아름다웠다 말해주렴.
나 두 눈 감는 날에는 잘살았다고 훌륭했다고 그 말만 꼭 해주렴.
인생아, 내 곁에 있어 줘서 정말로 고마웠다.

해 질 무렵 붉게 물든 하늘이 배경이 되어주어서 그런가 울컥 눈물이 나온다.

어쩌면 노래라는 것은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데에 일등공신이 아닌가 싶다. 허튼소리 같은 유행가 한 자락에 큰 교훈을 얻고 마음을 추스를 때가 있다. 음악 속에서나마 미세먼지 없는 꽃피는 봄날 방콕(방에서 콕 처박힌)여행 잘했다.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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