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의회 「주한군철수」공식논의 "첫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미국쪽의 주한미군 철수 논의가 최소한 기록상으로라도 새로운 단계에 들어섰다. 그동안 특히 「부시」행정부에 들어오면서 의회등 각계에서 간헐적으로 철군 주장이 제기돼왔다.
그러나 23일 상원 세출위국방소위에서 「데일·범퍼즈」등 5명이나 되는 의원들이 1만명의 주한미군 삭감을 내용으로 하는 법안을 의회에 제출한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2일 미군병력을 1만명으로 삭감하자는 골자의 보고서를 발표했던 「칼·레빈」상원의원도 이를 7월중순 국방예산수권법안에 대한 수정안으로 제출할 것이라고 보좌관들이 밝히고 있다.
「범퍼즈」의원등의 법안이 미의회를 통과할 가능성은 거의 없는것으로 의회관계자들은 분석하고 있다. 설혹 통과가 된다하더라도 현내용이 그대로 통과될 전망은 희박하다고 이들은 보고있다.
그러나 이법안제출의 의미는 통과여부에 있지않다. 법안으로 제출된 것을 계기로 미의회와 주한미군철수 논의가 공식적으로 개시된다는 뜻을 갖는 것이다.
법안을 제출한 측도 통과를 확신해서 이를 내놓은게 아니라고 풀이된다. 「부시」 행정부의 정책이 확연히 표명돼있기 때문이다. 「부시」대통령은 지난 2월27일 서울을 방문, 국회에서 행한 연설을 통해 이 문제에 관한 미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주한미군을 감축할 계획은 없다. 미육군및 해군장병들은 ①한국의 요청에 따라 북한으로부터의 침략을 저지하기 위해 한국에 와있으며 ②미군의 존재는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고 있다. 미군이 필요되는한, 그리고 그들을 이곳에 계속 유지하는것이 평화를 위해 도움이 된다고 우리가 믿는한 미군은 한국에 계속 머물것이다』고 그는 말했다.
「리처드·체니」국방장관도 22일의회에서 『대한방위공약이 영구불변이라고는 말할수 없다』는 전제를 비록 달기는 했지만 『미국은 현재로서는 대한안보개입을 삭감할 계획이나 의사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범퍼즈」의원처럼 병력감축규모·시기등 구체적인 내용의 법안이 제출되고 심의가 진행되는등 의회의 본격적 철군논의가 이루어지는 경우 행정부에 가해지는 압력은 적지 않을것으로 보인다.
가장 먼저 그 영향권에 들어갈 문제는 방위비 분담이다. 미의회는 이미 「레이건」행정부때부터 유럽·한국등의 분담증가를 강력히 요구해왔고 미행정부도 이와 호흡을 맞춰 해당국협상을 강화해오고 있다. 오는 7월17일부터 19일까지 워싱턴에서 열리는 연례 한미국방장관회담에서 방위비문제는 가장 큰 의제의 하나가 될것이며 미의회의 철군압력은 미측협상력강화에 강력한 지렛대의 효과를 발휘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들 철군법안은 단기적으로는 이 회의를 앞두고 행정부에 대해 압박을 가하는 효과를 겨냥한 셈이다.
그러나 방위비분담 문제를 떠나 주한미군을 무한정 두어서는 안되며 재조정이 있어야한다는 근본적인 고려가 점차 고개를 들고 있고 이번 법안도 이같은 움직임의 부분적 조직화인 점이 주목돼야 할 것같다.
철군주장은 의회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로버트·스칼라피노」 캘리포니아대 교수는 90년대초엔 한국군이 북한의 공격을 막아낼능력을 갖게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아모스·조단」 미전략및 국제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은 반미완화용 「10% 상징적 감군론」을 제시하기도 한다.
미행정부는 이같은 철군론에 대응하는 논리를 개진하는데 난점을 안고 있다. 주한미군의 기능, 즉 첫째 한국방위와 둘째지역방위중 후자의 기능을 노골적으로 강조하는데 한계를 안고 있다. 왜냐하면 미군의 한국주둔이 소련의 동북아군사력저지에 기여하고 있다고 강조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소련의 대북한 군사지원강화, 나아가 한반도에서의 강대국대치로 이어지는 것이다.
대한안보에 대한 미국의 태도는 한반도이외 지역, 특히 일본등에 대한 미안보공약의 신뢰도의 지속여부로 확대 해석되는등 복잡한 요소가 얽혀있어 법안제출 정도로 기본 상황의 변화가 이루어지는것은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풀이하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