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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기자 프리즘] 편의점보다 못한 한국 출판업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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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호 29면

신준봉 문화전문기자

신준봉 문화전문기자

제목이 자극적인가. 실제 우리의 출판업 현실이 그렇다. 편의점에서는 되는데 서점에서는 안 된다. 판매 시점에 상품의 품목·수량 정보가 자동으로 입력돼 재고 물량과 위치 파악이 가능한 유통 관리 시스템 말이다. 편의점은 이 땅에 상륙한 역사가 일천한데도(1989년 ‘세븐일레븐’ 올림픽 점이 국내 편의점 1호다) 일찌감치 포스(POS·Point of sales, 판매시점 정보관리) 시스템을 도입해 그런 일이 가능했다. 유통 분야의 정보기술 혁명 선두주자라는 평가다(전상인, 『편의점 사회학』).

이해 엇갈려 책 판매 통계도 못내 #도매상 등 시스템 마련 합의해야

출판업은? 근대적인 출판업의 기원을 일제 시대까지 올려 잡아야 하지 않을까. 업종의 역사를 따지면 편의점의 몇 곱절일 텐데 책이라는 문화 상품의 유통 과정은, 업계 종사자들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이렇게 후진적일 수가 없다. 기자가 세상물정 모르는 경우라고 믿고 싶다.

2017년 초 출판계 전체를 충격에 빠뜨렸던 대형 도매상 송인서적 부도 사태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출판 유통 시장에서는 위탁판매(여신거래)·어음결제 관행이 살아 있다. 모든 업종이 KTX처럼 일사불란한 유통망을 갖추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도매상이나 서점이 출판사 책을 일정 기간 맡아서 가지고 있다가 판매가 이뤄지면 출판사에 대금을 지급하고 팔리지 않을 경우 책을 반품하는 위탁판매는 자금 여력이 충분치 않은 도매상과 서점을 돕는 순기능 역할을 어느 정도 해왔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위탁판매는 어음결제 관행과 함께 송인서적의 부도를 부른 주범으로 당시 지목됐다. 이것들과 어지럽게 얽혀 있는 주먹구구식 유통체계가 피해를 키웠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송인서적 부도로 피해를 입은 출판사가 위탁한 책을 되찾고 싶어도 어느 지역 어떤 서점에 몇 부가 깔려 있는지, 아니면 송인서적 창고 한구석에 처박혀 있는지 알 수가 없어 답답함이 컸다는 당시 출판업자들의 하소연은 지금 생각해도 기가 막힌다. 어떤 책이 얼마나 팔려 어디에 얼마나 남아 있는지에 관한 정보가 전무하다 보니 생긴 일이다.

IT 강국임을 자부하는 한국의 후진적인 출판 유통 구조는 언제쯤에나 개선될 수 있을까. 물론 정부와 출판인들이 그동안 손 놓고 있었던 건 아니다. POS 기능을 포함하는 유통 관리 시스템 마련이 출판계의 20년 숙원사업이었다고 한다.

지난달 26일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원장 김수영)이 공개한 출판유통통합시스템 구축 계획은 그래서 우선 반갑다. 손에 잡힐 듯한 첫 성과물이다. 7월까지 전산 시스템 구축을 끝내고 출판사·서점·도매상 등 이해 당사자들의 참여를 유도해 2021년부터 시행한단다. 국고 50억원이 들어가는 사업이다.

하지만 진흥원의 장밋빛 홍보에도 불구하고 통합시스템의 실제 정착은 험난해 보인다. 도매상과 서점, 출판사 사이의 이해가 첨예하게 엇갈리기 때문이다. 같은 도매상들 사이에도 입장차가 존재한다. 핵심은 서점이나 도매상이 도서 판매 기록을 투명하게 공개하기를 꺼린다는 점이다. 출판사는 이 기록을 탐낸다. ‘깜깜이’ 책 공급에서 벗어나 그때그때 판매 대금을 청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출판인들은 앞으로 통합시스템 운영 주체가 자신들이어야 한다며 정부와 마찰을 빚고 있다. 정부는 정부대로 나랏돈이 들어간 시스템 운영을 민간에 넘길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그렇다고 서점·도매상만 죄인인가. 누구라도 생업 관행을 하루아침에 바꾸기는 어렵다. 이런 와중에 누구 하나 통합시스템에 참여하기를 거부한다면 반쪽짜리로 전락할 수도 있다.

누가 나서도 해결이 쉽지 않은 문제다. 고르디아스의 매듭처럼 단칼에 잘라버려야 하는 문제인지도 모른다. 참여를 강제하는 법제화 말이다. 하지만 법대로가 능사는 아니다. 여론에 호소하는 장외 투쟁이 수시로 벌어지지 않나. 법대로 이전에 운영 묘안에 합의하기 바란다. 고품격 문화상품을 만드는 문화인들답게 말이다.

신준봉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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