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대법원장의 블랙리스트 규정, 환경부 수사 기준 되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의 진실은 뭘까. 그 실체가 ‘불법 블랙리스트’인지 ‘합법 체크리스트’인지를 놓고 여야간 공방이 치열한 가운데 김명수 대법원장이 과거 국회에 나와 블랙리스트를 규정한 발언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사법부 수장이 직접 블랙리스트 기준을 밝힌 것이기 때문이다.

김 대법원장은 당시 “불이익을 줄 목적으로 특정인을 조사하고 그 결과를 적은 문서가 블랙리스트”라고 밝혔다. 사법부 블랙리스트에 대한 공방 중 나온 발언이지만 최근 제기된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과도 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2017년 9월12일 국회에서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12일 열렸다. 김 후보자가 의원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중앙포토]

2017년 9월12일 국회에서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12일 열렸다. 김 후보자가 의원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중앙포토]

2017년 9월12일 국회에서 열린 대법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
▶주호영 당시 바른미래당 의원=“저 판사는 재판 잘 못 한다 사생활에 문제 있다, 이걸 적어놓은 것은 블랙리스트입니까, 아닙니까?”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글쎄요. 절차 내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면 블랙리스트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주호영=“그러면 어떤 경우에 블랙리스트가 되는 겁니까?”
▶김명수=“어떤 불이익을 주기 위해서 그 사람에 대해서 조사를 하고 결과를 적은 문서를 블랙리스트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주호영=“저 판사는 판결에 좀 문제 있다고 조사해서 적어 놓으면?”
▶김명수=“평가 절차에 의해서 합법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 그것을 위법이라고 하거나 블랙리스트라고 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김 대법원장은 평가가 아닌 인사상 불이익(면직 등)을 줄 목적을 전제로 조사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봤다. 또 실제 불이익을 주는 등 결과가 발생했는지가 중요하며, 조사 역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근거를 갖춰야 한다고 본 것이다.

청와대 특별감찰반의 민간인 사찰 의혹을 제기한 김태우 전 검찰 수사관이 청와대가 고발한 사건의 조사를 받기 위해 지난 12일 오전 경기 수원지검으로 출석 후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청와대 특별감찰반의 민간인 사찰 의혹을 제기한 김태우 전 검찰 수사관이 청와대가 고발한 사건의 조사를 받기 위해 지난 12일 오전 경기 수원지검으로 출석 후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법조계에선 전(前) 정부 인사라거나 신분이 보장되는 자리가 아니라는 이유 등으로 사직서를 받는 것은 위법하다는 견해가 많다. 익명을 원한 대법원의 한 판사는 “청와대가 친정부 인사를 앉힐 자리를 확보하려고 합리적 근거없이 찍어내기 감사를 했는지가 핵심”이라며 “실제로 그랬다면 이건 김명수 대법원장이 정의한 ‘블랙리스트’와 정확히 일치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권은 환경부 사건의 경우 공공기관 임원을 상대로 합법적으로 감사한 것이어서 민간인 수만 명에게 불이익을 안긴 이명박ㆍ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와 비교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는 입장이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 20일 “블랙리스트란 먹칠을 삼가달라”고 요청했다. 합법적 체크리스트였다는 것이다. 탁현민 청와대 자문위원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전(前) 정부에서 사찰하고 모든 걸 포기하게 한 게 블랙리스트”라는 글을 올렸다.

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이 22일부로 탁현민 전 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을 대통령 행사기획 자문위원으로 임명한다고 밝혔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이 22일부로 탁현민 전 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을 대통령 행사기획 자문위원으로 임명한다고 밝혔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이와관련 최근 서울동부지검은 환경부의 압수물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사표 제출을 거부하는 산하기관 임원들을 감사하고, 감사 기한은 ‘무기한’이라고 적힌 문건 등을 확보했다. 청와대 인사수석시의 개입 정황도 일부 파악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자유한국당에서 제기한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 문건 [자유한국당 제공]

자유한국당에서 제기한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 문건 [자유한국당 제공]

야당은 연일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이날 당 회의에서 “문재인정권 초기부터 사법부 장악에 열을 올리더니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사찰하고 ‘죽을 때까지 판다’, ‘그만둘 때까지 사찰한다’는 집요함으로 사람들을 괴롭힌다”고 말했다.
현일훈 기자 hyun.ilhoo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