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새는 경제」저 욕구 처방|하반기 경제운용 대책 왜 나왔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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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부의 올 하반기 경제 종합대책을 들여다보면 곳곳에 위기감이 강하게 풍기는 가운데 작년말 올해 경제운용 계획을 발표할 때와 비교해 우리 경제에 대한 현실 진단이나 앞으로의 전망이 판이하게 달라졌음을 알 수 있다.
불과 6개월 남짓 사이에「경제를 보는 시각」이 이렇게 변전하게된 데는 우선 그간의 상황변화의 심각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던「『노사분규가 심하지 않다면…』『대미 통상마찰을 원만히 극복할 수 있다면…』등 몇 가지 전제가 붙긴 했지만 당시만 해도 올해 경제는 연속 l2%선의 고속성장이 조정 국면을 맞아 경기 하강을 겪긴 해도 8%성장은 무난하리라 예상 됐었다.
그러나 연초부터 노사분규가 대형·다발 하면서 1·4분기 GNP(국민 총생산)는 5.7%로 뚝 떨어졌다. 여기에 4월 이후에도 수출·산업 생산부진이 계속되는 가운데 실업이 머리를 들고 물가는 뛰는 전형적인 스태그플레이션의 조짐이 확산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정작 가장 큰 우려는 노사분규 등 각계 각층의 소득 보상적 욕구분출이 올해 들어서도 끝없이 전개되면서 정치· 사회의 혼돈과 겹쳐 경제를 토대부터 흔들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정부가 현 시점용 위기국면으로 인식하고 단지 남은 6개월 동안의 반기대책이 아니라 90년 이후까지 대비해 무언가 비상 대처를 해야겠다고 선언하고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의 이번 하반기대책은 크게 나눠 ▲각계 각층의 소득 보상적 욕구를 다시 한자리 숫자 이내로 자제시켜 고임금·고물가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설비투자지원·수출환경 정비를 통해 향후 성장 잠재력을 강화해나가겠다는 것으로 모아지고 있다.
우선 안정화 시책으로는 하반기 통화공급을 l7%선에서 묶어 연간 총통화(M2)증가율을 18%이내로 지키며 소비성 가계자금 대출을 규제, 과소비를 억제하고 연내 토지 기본법 등 일련의 토지공개념 법안을 법제화 해 나갈 계획이다.
또 물가측면엔 국민임금위원회를 설치해 임금인상의 적정화를 도모, 어떻게든 들뜬 인플레 기대심리를 꺾겠다는 생각이다. 최근 부총리가 의보수가·은행원 봉급인상 진화작업에 직접 나선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이와 함께 설비투자·수출지원을 위해선 임시 투자세액 공제제도와 무역 어음제도를 새로 도입키로 했다. 임시 투자세액 공제는 생력·자동화투자를 촉진, 현 시점에선 실업을 가속화시킬 우려가 없지 않으나 기업의 투자마인드가 크게 위축됐다는 점에서 논란 끝에 실시를 결정했다.
현재 우리경제 위기감의 근원이 따지고 보면 각계 각층의 끊임없이 펼쳐지는 자기 몫 실현욕구에서 온다는 데서 이의 자제와 단절을 선결과제로 들고나 온 정부의 판단은 당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동시에 이를 이룩하는데는 정부만의 힘으로 안되며 전반적인 사회분위기의 변신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이번 경제운용대책에 과소비 억제와 저축 증대를 위한 범국민운동, 기업윤리 선포대회 등 전국민 캠페인성 운동이 많은 것도 수긍이 간다.
사실 지난 2∼3년간 높은 임금인상·원화절상 속에도 경제가 이만큼 지탱할 수 있었던 데는 세계 경제흐름에 경쟁국인 일본·대만이 훨씬 높은 환율절상으로 우리가 수출가격을 올릴 수 있었는데다, 기업측도 영업외 이익확대 등으로 임금상승·원화절상 부담을 자체 흡수할 수 있는 여건이 되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해도 높은 임금인상이 계속된 결과 명목 임금은 3년사이 62.5%나 뛰었다. 여기에 성장 감퇴는 가속화하면서 경제가 한계에 다다른 것이 현실로 비상처방이 절박해진 게 사실이다.
그러나 정부의 이 같은 현실진단은 맞다하더라도 그 대책이 실효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먼저 경제가 제 궤도에 다시 진입하려면 각계의 욕구분출이 스스로 갈피를 갑아 나가야 하는데 사화분위기는 그게 아니다.
또 이 시점에 통화를 풀어 경기부양책을 쓰는 것은 오히려 경제 안정을 해칠 것이라고 정부는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성장둔화·수출 생산부진·실업이 눈앞에 닥치면 지금도 소리가 나는 판에 곳곳에서 목소리는 높아질게 분명해 정부가 이를 외면하고 일관된 안정기조를 밀고 나갈 수 있겠느냐도 의문시 되고있다.
현 경제상황은 경제팀 만으로는 추스려 잡기 어려운 국면이다. 그렇다면 정부나마 결집능력을 보여줘야 할 텐데 허점은 많고 특히 정치권에서는 여당조차 작년의 추곡수매가 결정부터 최근의 택시요금 인상까지 경제논리보다 정치논리를 앞장세웠다. 정치권에서 매듭을 풀기보다는 오히려 경제의 짐을 지워 오고있는 것이다.
결국 올 하반기 이후 경제운용은 정부가 경제위기에 대한 범부처적 공동인식아래 강한 대처능력을 보여주느냐에 성패가 달렸고 그것을 가시화할 수 없다면 파국을 각오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지금 제기되고 있는 각종 경제문제의 병근이 그 근원을 캐 들어가면 우리사회에 누적돼 온 물질적 배분의 불균형 외에 온 국민이 공유해야할 도덕적 가치기준의 붕괴, 그리고 정부를 비롯한 지도층의 신뢰 상실 등에 있다는 점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이 같은 정신적 황폐에 대한 근본적인 치유가 없이 몇 가지 대중요법만 가지고는 회복하기 어려운 중병을 우리경제는 앓고 있다는 점올 지적하고 싶다. <장성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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