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군단 기부금 아직 '부족한 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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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광복 직후 남한으로 내려와 평생을 홀로 산 김춘희(81) 할머니. 보육원 식모, 공사판 노동, 과일장사 등으로 힘겹게 생계를 꾸렸다. 10년 넘게 당뇨와 고혈압으로 병원 신세를 진 김 할머니는 2004년 말 병원을 나서면서 전세금 1500만원과 1000여만원의 현금을 기부하기로 결심했다. "지역(서울 양천구) 장애인들에게 작은 보탬이 됐으면 좋겠다"는 뜻이었다.

#2.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하는 염경진(43)씨는 지난해 4월부터 매월 100만~200만원씩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하고 있다. 올해 4월까지 기부액은 모두 2900만원. '기부는 곧 나를 살찌우는 것'이라는 그는 "세 살 된 쌍둥이 딸한테 좋은 가르침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전 재산의 85%인 37조원을 기부한 워런 버핏의 결단이 큰 반향을 일으킨 가운데 국내 기부문화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1990년 고(故) 이복순 할머니가 김밥을 팔아 모은 50억원을 충남대에 기부한 이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 가파른 증가세=98년 출범한 국내 최대 기부 단체인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이하 모금회)에 접수된 기부 금액은 지난해 2147억여원에 달했다. 이는 2000년 510억원에 비해 400% 이상 증가한 금액이다. 이 중 기업기부는 2000년 286억원에서 지난해 1453억원으로 다섯 배 가까이 늘어났다.

개인기부도 2000년 106억원에서 2005년엔 세 배 이상 증가한 354억원이었다. 기부 건수도 같은 기간 800여 건에서 18만6000여 건으로 크게 늘었으며, 이 중 90%가 '개미군단'의 기부다.

기부문화 확산을 기치로 2000년 출범한 아름다운재단도 창립 당시 349명의 기부자가 지난해 5월 현재 2만3000여 명에 달했다. 기부금 액수도 같은 기간 7억원에서 110억원으로 급증했다.

특히 액수면에서 기업과 개인의 비율이 2000년 8대 2에서 최근 6대 4로 바뀐 점이 눈길을 끈다. 아름다운재단 관계자는 "중산층 회사원이 많지만 노점상 주인부터 기업 CEO까지 다양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개인기부의 증가 추세는 시민의식이 성숙되고 있음을 반영한다고 사회복지계에선 보고 있다. ARS 자동전화, 인터넷 자동이체 등 기부 방법이 다양해지면서 손쉽게 기부에 참여할 수 있게 된 것도 기부문화 확산에 한몫했다.

◆ 아직 부족한 2%=개인기부 참여는 늘고 있지만 금액 비율은 개인 대 기업이 3대 7로 기업의 고액기부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는 기부 선진국인 미국의 8대 2, 일본의 9대 1과는 다른 모습이다.

개인 기부액을 늘리기 위해 기부액의 10%인 소득공제 범위를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다. 미국은 50%, 일본은 25%까지 소득공제 혜택을 주고 있다.

연세대 강철희(사회복지학) 교수는 "우리의 가족중심 문화 때문에 유산 기부에 대한 거부감이 큰 편"이라며 "제도적 보완과 함께 '기부는 나와 내 후손에게 돌아온다'는 의식의 확산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권호.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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