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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최고 실적 1년 만에 … 닛산차 다시 휘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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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여러분, 이 터널을 3개월만 지나면 빠져나갈 수 있습니다. 제발 나를 믿어주세요."

27일 일본 요코하마(橫濱)의 한 호텔에서 열린 닛산자동차의 주주총회장에서 카를로스 곤(사진) 사장은 진땀을 뺐다.

판매 부진, 주가 하락의 원인과 그 책임을 집요하게 캐묻는 주주들의 질문공세에 곤 사장은 "날 믿어 달라"란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사상 최고 실적의 환희에 흠뻑 젖었던 지난해 총회 때와는 딴판이었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일본 내에서 '위기에서 V자 부활'을 이뤄낸 대표 기업으로 불리던 닛산이 또다시 위기의 늪에 빠졌다.

먼저 일본뿐 아니라 전 세계 시장에서 판매가 뚝 떨어졌다. 일본 내에선 지난해 10월 이후 8개월 연속 전년 동기 대비 판매량이 떨어지고 있다. 4월의 경우 27% 감소, 지난달은 20%가 감소했다. 미국에서도 경쟁사인 도요타.혼다는 매달 두 자릿수 증가율을 보이며 사상 최대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지만 닛산은 오히려 10% 가까이 떨어지고 있다. 일본과 미국 주요 공장에서 생산량 조절을 해야 할 판이다.

곤 사장은 이날 주주총회에서 "올해 국내 판매는 80만 대 정도"라고 밝혔다. 지난 4월 내놨던 올해 판매예상치 84만6000대를 불과 한 달여 만에 하향조정한 것이다. 이에 따라 전 세계 판매 370만 대의 목표치도 실현 가능성이 낮아졌다. 주가도 지난달 최고점 1556엔에서 28일에는 1183엔으로 떨어졌다. 한 달 만에 24% 급락하며 경쟁사 도요타.혼다와의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시장이 닛산에 등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선 "'곤 매직'이 한계에 달했다"는 비관적 분석까지 내놓고 있다. 일 언론들도 특집으로 닛산의 위기를 다루기 시작했다.

업계에선 '닛산 2차 위기'의 배경으로 ▶신차 부족▶하이브리트 차량 부재▶판매장려금 삭감 여파 등을 들고 있다.

지난해 9월까지 신차 출시와 판매 캠페인을 지나치게 몰아친 반작용으로 올 상반기에는 신차가 하나도 없었다. 여기에 고유가로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하이브리드 승용차 부문은 도요타의 독식 상태다. 또 4월 판매장려금을 대폭 삭감하면서 판매 일선에서 닛산차에 대한 홀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곤 사장이 르노의 최고경영책임자를 겸임하면서 닛산 일에 소홀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닛산 측은 "저비용 구조로 나가기 위한 성장통을 앓고 있을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판매는 줄어도 이익을 낼 수 있는 구조로 변신했기 때문에 별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또 올 하반기 9개의 신차종이 나오면 판매 부진도 해소될 것이란 설명이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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