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정 "속옷 내려온 줄도 모르고 춤췄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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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만큼이나 술자리 수다도 유쾌하다.

세대 불문하고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가수 장윤정(26)과 술잔을 기울이며 흉허물 없는 대화를 나누었다. 평소 화통하고 괄괄한 성격으로 소문난 그는 술자리에서도 옆사람을 즐겁고 기분좋고 편안하게 하는 '재능'을 발휘했다.

첫 잔을 가득 따르고 건배를 외치며 '짠~'하고 잔을 부딪히자, '짠짠짠하게 하지 말아요'(<짠짜라> 후렴)라며 흥겹게 노래를 부른다. 그의 순발력과 재치에 좌중의 분위기는 금세 업됐다.

"어떻게 제가 이런 삶을 꿈꾸기나 했겠어요. 내 인생에 로또가 터진 기분이죠." 지금 받고 있는 넘치는 사랑에 감사하는 장윤정과의 취중토크 자리엔 '깔깔깔' 웃음소리가 떠나질 않았다.
 
● 술깨어 일어나보니 도서관 책상 위
 
지난주 비가 내리던 날 서울 강남의 횟집 '오수사' 에서 그를 만났다. "내일 스케줄이 없어야 술을 마음 놓고 마시는데…." 장윤정이 매니저를 보며 입을 쑥 내민다. 소주는 써서 잘 입에 대지 않고 과일주를 즐긴다. 산수유 열매주를 즐겨 마신다. 3병 정도는 거뜬하다.
 
"술을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고 배실배실 웃으면서 얘기하길 좋아해요. 이 좋은 술을 마시고 왜 실수를 하는지 모르겠어요." 장윤정은 깔끔하게 한 잔을 비워버린다.

대학(서울예대 방송연예과)에 입학해 처음 술을 접한 그. "와, 선배들이 처음 술을 사준날 '세상에 이 좋은 걸 내가 왜 모르고 살았나' 천국이 따로 없더라니까요. 술자리를 너무나 좋아해서 다 따라다녔죠." 술에 대한 강한 애착…. 취중토크가 제대로 손님을 만났다.
 
그의 술버릇은 웃으며 계속 얘기를 하는 것. 그러다 가끔 많이 마신 날은 속수무책인 곳에서 잠이 들기도 한다. 대학시절 에피소드 한 토막.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 화장실에서 문잠궈놓고 잠이 들었어요. 친구가 화장실 문을 뛰어넘어 저를 데리고 나간적이 있었어요. 또 하루는 자고 있는데 자꾸 누가 절 깨우는 거에요.
잘때 건드리면 싫어하거든요. 일어나서 막 화를내고 뭐라고 했는데, 제가 누운 곳을 보니 글쎄 도서관 책상 위더라구요.ㅋㅋ"

술을 냉큼 또 한잔 비웠다. 장윤정은 춤을 추는 신세대 트로트 가수로 데뷔시절 눈길을 끌었다. 지금은 약간 '뻣뻣'해 보이지만 대학시절 그는 학번 대표 치어리더였다.

"채연씨가 98학번 치어짱, 제가 99치어짱이었죠. 지금은 관절이 퇴화됐는지 영 춤이 안되네…. 내가 그때는 웨이이브가 됐다니까요. 완전히 낙지, 활어였지." 팔을 들어 웨이브 동작을 흉내 내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2년 동안 겨울에 난방없이 지내

그는 요즘 자신의 인생을 "로또 당첨된 기분으로 살고 있다"고 표현한다. 1999년 강변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아 화려하게 입문했다. 대상을 받으면서 단박에 스타가 될 줄 알았다.
 
"대상받으면 모든게 다 해결되는 줄 알았죠. 뭐든 다 된 것 같았고 다음날부터 마스크 쓰고 다니고 혼자 쇼를 했죠. 그런데 아무도 못알아보던걸요."
 
모든걸 다 잡을 듯 인생은 그에게 최고의 기쁨을 선사했지만 바로 다음은 낭떠러지였다. 아버지의 사업은 부도가 나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계약한 기획사는 몇 번 녹음을 거듭 다시하다 음반을 내주지 않았다. 다른 회사로 옮겨봤지만 곧 도산하고 말았다.
 
장윤정은 수렁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고 이 시기를 표현한다. "얼마나 경제적으로 힘들었는지 단적으로 표현하면 2년 동안 겨울에 난방없이 지냈어요. 혼자 살때였는데 도시가스가 다 끊겨서 헤어드라이어로 이불 안을 따뜻하게 데운 후 잠을 잘 정도였죠. 어휴, 겨울이 얼마나 길고 춥던지…. 그래서 함부로 돈벌었다 얘기도 못하겠고, 고생이란 말도 쉽게 못하죠."
 
이런 얘기를 할 때도 그는 씩씩하다. 술잔을 또 부딪혔다. "음반 내는 일이 안풀리면서 회사에 취직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때 건강까지 나빠지는 것 있죠? 화는 겹으로 온다는 말을 실감하겠더라구요. 인생에 이렇게 악재가 겹칠 수 있구나를 배웠죠."
 
신장이 안좋아 열이 펄펄 끓고 정신을 잃을 정도였지만 입원비가 없었다. "집에서 혼자 끙끙 앓으며 정신이 혼미해져가는 걸 느꼈어요. '이러다 죽겠구나. 이마에 119에 신고해 달라고 쓰고 기어갈까' 생각을 했지만 기어갈 여력도 없을 정도였어요. 이때 친구가 연락이 안돼 걱정된다면서 저를 찾아왔어요. 그 친구한테 돈을 꿔서 입원할 수 있었죠. 당시에 2만~3만원씩 친구들이 모아준 돈으로 살아날 수 있었어요. 정말 그 친구들 한테는 은혜를 갚아야 해요."

●밤무대서 노래하기 힘들죠

얘기가 무르 익어갈 무렵 갑자기 한 취객이 "여기 어머나 가수가 왔냐"며 방문을 덜컥 연다.
 
기자는 좀 황당했지만 장윤정은 "에이구 저 아저씨 술 많이 드셨네"라며 아무일도 아닌듯 받아넘긴다. "매일 술 손님들 앞에서 노래부르는데 저 정도쯤은 가뿐하죠."
 
생글거리면서 얘기를 하지만 술 손님들을 상대로 노래 부를 때 맘고생은 만만찮다. 초반엔 그만둘까도 생각했지만 가수는 무대를 가려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며 자신을 달랬다. 트로트는 서민들이 술 마시는 자리에서 더 많이 사랑 받는다는 사실도 알았다.
 
"제 나이엔 대부분 밤무대를 가지 않는 가수들이 많아요. 어떻게 그런 곳에서 노래를 부르냐고 의아해하는 친구들도 있구요."
 
무대 위로 맥주병, 술 안주를 집어던지는 일은 예사. 맥주병을 손으로 막아내기도 했고 무대 위로 뛰어 올라와서 장윤정을 붙잡고 늘어지는 팬에 끌려내려갈 뻔도 했다.
 
"첨엔 너무 놀라고 무서워서 울고 불며 밤무대 안오겠다고 했어요. '이렇게까지 노래를 해야하냐'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죠. 그런데 이젠 방법을 터득했어요. 앞만 보고 노래를 불러요. 마치 카메라가 앞에 있는 것 처럼요. 그리고 욕하는 분들이 있으면 '어머, 이렇게 환영을 해주시네. 그렇게 많이 사랑하신다구요. 고마워요'라고 받아넘겨요."
 
웃으며 얘기하지만 그의 마음에 상처로 인한 굳은 살이 많이 배겼음을 느낄 수 있다. 장윤정은 최근에 나타난 취객들의 신종 장난을 하나 귀띔한다.
 
"치마속을 찍기 위해 휴대폰을 무대 위로 굴러 넣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럼 우리 댄서들하고 저랑 휴대폰을 발로 차버리죠. 아님 밟던가."

● 이상형은 체격 우람하고 키 큰사람
 
남자 친구 없냐고 물었다. "어이구, 인터뷰 하는 내내 휴대폰 한 번 안 울리는거 못봤어요? 제 휴대폰이 명품 시계가 됐어요. 도무지 울리지가 않죠…."
 
요즘 들어 부쩍 외로움을 느낀다. 스케줄이 많다보니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수 없고, 친구들과의 단절감도 많이 느낀다. 쏟아지는 시선이 힘들 때가 많다.
 
"하루종일 컴컴한 밴안에 갇혀있다 보면 낮인지 밤인지도, 바깥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가 없어요. 하루종일 굶다 휴게실에서 우동 한 그릇을 먹으려 해도 편안하게 먹을 수가 없어요. 걷지를 못해 꼭 다리가 퇴화되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죠. 우울증에 걸리는 것 같아 매일 일기를 써요. 일기가 꼭 유서 같은 생각이 들때도 있어요."
 
늘 밝은 표정의 그에게도 외로움은 빗겨가질 않았다. 잠시 표정이 어두어지는가 싶더니 술 한모금 들이키더니 이내 밝아진다.
 
"이런 외로움을 달래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요. 첫사랑이 있긴 했는데 애절한 사랑이 아니었죠. 지금 사랑을 하면 애틋하게 할 것 같고 '이 사람 때문에 산다' 그런 남자 만나고 싶어요. 난 이 나이에 사춘기가 오나봐~"
 
이상형은 체격이 우람하고 키가 큰 사람, 어른스러워 말이 잘 통하고 이해심이 많은 사람이다. "빨리 좋은 사람을 만나 1~2년쯤 연애하다 결혼하고 싶다"는 그는 물론 음악 역시 평생 함께 할 길이라고 여긴다.
 
"다음엔 멋진 남자친구를 소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남기고 마지막 원 샷으로 술자리를 정리했다.

이경란 기자 사진=임현동 기자

*** 속옷 내려온 줄도 모르고 춤춰

치어리더로 한창 활약하던 시절의 일. 쇼핑몰 앞 야외무대에서 치어리더 대회가 열렸고 그는 주요멤버로 참여했다.
“그땐 내가 춤을 제대로 췄죠. 열심히 춤을 추고 내려왔는데 글쎄 옷이 이상한거에요. 알고보니 상의 속옷이 벗겨진거죠. 얼마나 열심히 했으면 그랬겠어요.”

●‘예쁜척’하려면 얼굴에 쥐날것 같아

털털한 성격의 그는 ‘예쁜척’이 아직 몸에 익숙하지 않다. “제가 곱게 자라질 않아서 가식적으로 웃는 표정하려면 쥐날것 같아요. 윗니 8개 들어나게 웃으려면 볼이 떨린다니까요. 거지왕자 얘기 보면 거지가 왕자로 사는걸 되게 힘들어 하잖아요. 꼭 제가 그런 것 같죠. ”

● 엄마 아빠랑 상추·고추 키워야지

그는 돈을 벌어 최근 강원도 원주에 부모님을 위한 전원주택을 지었다. 요즘 가장 큰 행복은 부모님과 둘러앉아 집 얘기를 하는 것. “가족이 모여사는게 꿈이었던 때가 있다. 그때를 생각하면 꿈만같다”는 장윤정은 “부모님이 텃밭에 상추·고추 키울 생각에 꿈에 부풀어 있는데 그 모습을 보니 행복하다”며 가족에 대한 사랑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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