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기 힘든 대학 방정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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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살아 용솟음치는 한국경제의 상징이자 「뻘 밭에서 일군 기적의 현장」으로 일컬어져 온 옥포 대우 조선소가 평소 줄을 잇던 견학 방문의 발길조차 끊긴 채 생명력을 잃고 정물화 속의 한가한 풍경으로 변해 버렸다.
노조 측의 파업 유보 결의로 12일부터 일부 작업장에서는 망치소리와 용접 불꽃이 되살아나기 시작했지만 조선소의 분위기는 여전히 삭막하고 어수선하다.
옥포 현장을 돌아보노라면 그 둔중한 철판만큼이나 두터운 불신의 찌꺼기가 곳곳에 쌓여있는 것을 쉽게 느낄 수 있다.
『김회장의 손에 든 5백억원 보다는 마누라 시장바구니에 든 5백원이 우리에게는 더 중요하다』는 노조 측의 유인물이나 『근로자들의 분신은 1억원에 달하는 위로금을 노린 맹목적인 자살 행위』로 매도하는 A회 명의의 유인물에서도 대우 조선분규는 짙은 노사 불신에서 비롯됐음을 한눈에 알 수 있다.
폐업에 대해 겉으로는『절대 할 수 없다』는 노조 측이나, 『하고 싶지는 않다』는 회사측의 주장을 들을 때는 해결의 실마리는 쉽게 손에 잡힐 듯 싶다.
그러나 『폐업 선언은 엄포용』으로 규정하고 『이 기회에 노조활동을 박살내려는 전술』 이라며 연일 집회를 계속하고 있는 노조와 『회사 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면서 저런 쪽으로 나가야 하나』라고 개탄하면서 폐업 절차를 밟아 나가는 회사측을 보면 분규는 곧 파국으로 치달을 것만 같다.
이런 불신의 대림이 계속되는 바로 이 순간에도 많은 대형 고객들이 일본과 대만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는 소식이 지켜보는 사람들을 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다.
이곳 주민들도 『임금이 오르면 결국 현지 주민들도 이익』이라는 노조 측의 주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 아니나 그 동안 숱하게 보아온 노사불신이 자칫 폭발해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에 불안해하는 모습이다.
『한여름 뙤약볕 아래 불덩이 같은 철판 밑 용접일 을 할 때면 차라리 자살하고 픈 충동이 인다』며 하소연하는 노조.
『적자 구덩이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고통을 왜 노조는 함께 지려 하지 않느냐』고 하소연하는 회사측.
대우 조선 측은 이번 분규가 해결되고 나면 앞으로 최첨단 정밀 기계 단지로 만들어 잠수함·굴착기까지도 만들어 내겠다는 청사진을 펴 보이고 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우선 대우 조선이 기술축적을 해야할 것은 노사대립과 불신의 방정식을 풀어 나가야 할 협상 테이블이 아닌가 싶다.
맨손으로 일군 기적의 상징인 저 거대한 골리앗 기중기도 노사가 등을 돌리는 순간 고철덩어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눈앞에 보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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